UPDATED. 2024-04-20 04:03 (토)
철근 가공·실수요 ‘수주중단’ 검토①
철근 가공·실수요 ‘수주중단’ 검토①
  • 정호근 기자
  • 승인 2018.11.19 0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벼랑 끝에 선 철근 제강사가 특단의 조치를 고심하고 있다. 철근 시장의 대세로 수요흐름을 견인해 온 가공 실수요의 수주중단이다.

수주중단에 대한 검토를 시작한 것 만으로도 큰 충격이다. 가공 실수요를 중심으로 얽혀 있는 거래구조를 고려할 때, 철근 시장의 파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클 수 밖에 없다.

본지는 철근 시장의 판도가 바뀔 수 있는 '가공 실수요 수주중단' 이슈를 진단하고 조망하는 특별기획을 연재한다. 중대한 현안에 대한 이해와 공론을 돕고자 마련했다.
 

■ 가공 실수요, 수주중단 검토 '착수'…수면 위 현안
가공 실수요 수주경쟁을 이어오던 철근 업계는 근본적인 고민에 직면했다. ‘가공 실수요 수주를 왜 해야 하는 것인가’, ‘수주 할수록 깊어지는 거래왜곡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가’, ‘지금 이대로의 시장구조를 버텨낼 수 있는가’ 등 쌓여온 고민에 대해 ‘불가능’이라는 일단의 결론에 도달했다.

뾰족한 대안이나 해법을 찾은 상황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 이대로의 가공 실수요 수주가 불가능하다’는 확고한 결론에서 새로운 고민에 나서고 있다. 주요 철근 제강사는 각 사별로 수주중단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절차와 형태에 대한 다각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

철근 제강사의 가공 실수요 수주중단 검토가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랜 시간 수주와 일시적 수주중단을 반복해오면서 깊어진 고민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 것이다. 변화에 대한 또 다른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의 발로다.

▲ 부담스러웠던 대세 ‘가공 실수요’
'가공 실수요'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철근 공급과 최종 수요처 간의 '실수요' 거래에 '가공'이라는 별개의 영역이 묶인 일괄수주(Turn key) 방식의 장기계약이다. 제강사의 실수요는 물론, 유통점을 통한 프로젝트 수주를 포함하는 영역이다.

그리 오래된 개념은 아니다. 지난 2012년 통합 솔루션 차원의 마케팅으로, 가공포함 실수요가 장기계약 형태로 시작된 것을 본격적인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가공포함 장기계약이 건설사의 큰 호응을 이끌어내면서 철근 업계의 수주경쟁이 본격화 됐다. 생산능력 확장과 공급과잉 압박에 시달려온 철근 제강사가 너도나도 가공 실수요 수주경쟁에 뛰어 든 것. 구매편의와 리스크 회피 등 다양한 수혜에 대한 건설사의 실감이 커지면서 가공 실수요 시장은 급속한 성장가도에 오르게 됐다.

가공 실수요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은 지난 3년(2015년~2017년) 의 호황기였다. 사상 최대 철근 수요가 가공 실수요를 중심으로 견인되면서 시장의 구조가 크게 바뀌게 됐다. 지난 2011년 220만톤 규모이던 가공 실수요 시장은 2017년 560만톤까지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6년 동안 늘어난 340만톤 가운데 230만톤(67.7%)이 3년 호황 동안 늘어났다.

지난해 철근 제강사가 직접 수주한 가공은 전체 실수요 판매의 70%. 또한, 제강사의 가공 발주량(유통점 프로젝트 수주분 포함)은 350만톤으로 2016년 보다 50만톤이나 늘어난 규모였다.

가공 실수요 가격결정은 분기단위 기준가격에 할인폭 경쟁을 더하는 식이다. 여기에 별도의 가공수주 단가를 합산 책정하는 구조다. 절대적인 가공포함 실수요가 건설사의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결정된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넘는 공급기간의 가공 실수요가 할인을 전제로 한 고정식으로 결정되는 셈이다.
 

■ 수주중단 검토 나선 가공 실수요, 무엇이 문제였나?

▲ 부가가치 상실 넘어 적자수주까지..,’멈추지 못한 경쟁’
가공 실수요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되어 왔다. ‘가공=서비스’라는 인식이 고착화되면서 가공에 대한 부가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 문제가 컸다. 독자적인 부가가치 영역이던 철근 가공이 장기 실수요 수주경쟁을 위해 희생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부가가치의 상실보다 더 큰 문제는 적자수주 문제였다. 가공 실수요가 성장해 온 대부분 기간동안 제강사는 적자수주에 시달렸다. 시중 가공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철근 가공을 수주하고, 웃돈을 얹어 재발주 하는 구조였다. 이러한 구조 탓에, 철근 가공단가의 비현실화 문제가 확대 됐다는 지적까지 떠안게 됐다.

일방적인 입찰계약에 끌려가는 문제 또한 커졌다. 가공 실수요의 일괄발주 효과를 키우기 위한 건설사의 현장(입찰대상) 통합 추세는 당연했다. 규모가 커진 입찰 현장은 돌아선 제강사의 발길도 되돌릴 만큼 유인력을 갖는다. 안정적인 수주물량 확보로 미래 불안감을 줄이고 싶었던 절실함이 감당할 수 없는 할인폭 경쟁으로 이어졌다.

악순환의 문제를 키워온 셈이다. 사상 최대수요의 호황에도, 극심한 품귀 시장에서도, 철근 제강사는 장기 가공 실수요에 대한 과도한 할인경쟁을 멈춰 서지 못했다.

▲ 장기계약에 발목 잡힌 철근, '왜곡'과 '부작용'
가공 실수요 시장이 급성장을 이어오는 동안 왜곡과 부작용은 깊어 졌다. 불확실성의 문제가 커졌다. 납품시점의 원가와 시황을 가늠할 수 없는 장기계약 실수요에 대한 가치판단이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불확실성 문제는 철근 제강사의 거래판단과 예측·조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 것은 물론, 무책임한 저가수주 경쟁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까지 작용했다.

왜곡의 문제는 철근 시장 전반으로 확대됐다. 가공 실수요 대세가 커지면서 철근 유통 시장은 설자리를 잃게 됐다. 또한 제강사가 장기계약으로 묶인 저가 가공 실수요에 매달리면서 유통 대리점과의 상생을 이어 가기 어렵게 됐다. 가공 실수요 대세에 뛰어든 유통점들은 제강사와 건설사 사이에서 훨씬 열악한 거래에 시달려야 했다.

문제는 품귀 시장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제강사는 시중가격보다 톤당 5만원~6만원, 수입 철근보다 낮은 납품가격의 가공 실수요 납품차질을 막기 위해 애를 태웠다. 유통점은 거래에 나설 재고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상대적인 고마감으로 박탈감이 커졌다. 실수요 대응 유통점은 시장에서 고가 매입한 철근을 저가 실수요에 납품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경험이다.

부자재 가격폭등 또한 장기 가공 실수요 계약의 구조적 문제를 부각시켰다. 지난해부터 전극봉과 합금철, 내화물 등 핵심 부자재 가격의 폭등 부담이 지속됐지만, 철근 업계는 천재지변 같은 원가상승의 반영 대안을 찾지 못했다. 사실, 찾을 수 없는 구조였다.

부자재 가격폭등 상황에서 일본의 철근 제강사는 장기 실수요 거래에 대한 근본적인 거래구조 개선이나 적극적인 엑스트라 인상에 나서고 있다.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각별할 수 밖에 없는 시선이다.

▲ 경영적자, 현실 위기의 직면..'본질적 고민'
철근 제강사는 기업으로서 가장 본질적인 고민에 도달했다. 부가가치 상실이나 기회손실을 넘어 영업적자를 현실로 마주하게 된 경영위기다. ‘대체, 그동안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막연하게 이어온 회의감은 심각한 위기로 바뀌게 됐다.

철근 주력 제강사의 수익성(영업이익률)은 올 들어 곤두박질 치고 있다. 5개사 가운데 3곳은 2015년을 정점으로 3년 연속 수익성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사상 최대수요와 극심한 품귀를 반복해온 시장의 결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최근 년도 들어 제강사간 수익성 격차가 확대된 점을 주목할 만 하다. 원부자재와 압연원가, 판매단가에서 변별력을 찾기 힘든 철근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수익성 편차의 가장 큰 원인으로 가공 실수요가 지목된다.

가공 실수요 대세를 적극적으로 쫒았던 제강사의 심각한 수익악화. 자의든 타의든 가공 실수요 대응에 소극적이었던 제강사의 상대적 수익 우위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올해 철근 수요는 1,100만톤 규모로 3년 호황의 평균(1,148만톤)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수입산 철근의 공급 공백으로, 철근 제강사의 판매량은 3년 호황의 평균(1,030만톤)과 비슷할 것으로 관측된다.


가공 실수요 문제는 출발과 과정에서 상당부분 철근 업계가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을 부정하기 어렵다. 절박한 변화는 과오와 현실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문제에 대한 재단 없는 분석과 공감 또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철근 가공 실수요 수주는 왜 해야 합니까?" 7년이 지난 2018년에 던져진 질문의 의미는 크게 바뀌게 됐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