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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철근 시장, 품귀의 품격
이상한 철근 시장, 품귀의 품격
  • 정호근 기자
  • 승인 2018.11.12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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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in 정호근 기자
스틸in 정호근 기자

어김없는 계절을 실감케 하는 낙엽과 함께, 철근 시장의 한숨 같은 푸념이 쌓여가고 있다.

"철근 구하기 정말 힘든 데, 이익 내기는 훨씬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언뜻 들어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하소연이다. 하지만 요즘 철근 시장에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씁쓸한 현실이다.

별 따기처럼 힘든 철근(재고)을 구해도, 사는 가격이나 파는 것이나 별반 차이 없다. 한정판 신제품도 아닌 철근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받은 재고를 판매해도 마진을 남길지 적자를 남길지 모르는 불편한 속사정. 모든 것이 요즘 철근 시장을 묘사하는 실상들이다.

적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철근 제강사는 시중가격보다 톤당 5만원~6만원 낮은 실수요 납품차질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매출을 올릴 철근 재고조차 받지 못했던 유통 대리점은 다가서면 멀어지는 마감가격만 쫒다 가을 성수기 대부분을 보냈다. 가동률 걱정으로 성수기를 시작했던 가공업계는 그 나마의 수주물량도 철근이 없어 발을 구르고 있다.

분통을 터트리는 하소연은 철근 시장 어디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철근 구하기가 힘든데, 대체 가격은 왜 안 오르는 거죠?" 대답은 정해져 있다. "더 이상 가격이 오르기 힘들다는 고점인식 때문이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상식은 아니다. 재화를 사고 파는 시장에서 찾는 물건이 없으면, 가격은 올라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품귀로 애를 태우는 철근 시장은 당장의 현실에도 충실할 수 없을 만큼, 삭막한 마음을 품게 됐다. 혹시 철근 가격이 오르지 않는 진짜 이유가 이 때문은 아닐까. 철근 시장에 팽배해진 것은 ‘더 오르기 힘들다’는 고점인식이 아닌, ‘더 나아질 게 없다’는 회의감은 아닌가.

"작년 까지만 해도, 품귀 시장에서 철근을 구하면 금(돈,수익)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은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철근이 없어서 난리면 적어도 누구 하나는 이득을 봐야 하는데, 제강사, 유통점, 건설사 중에 누구 하나 이득 본 사람은 없고 다들 힘들다고만 하니…"

분명 이상한 시장이고 이상한 일이다. 시장의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이상한 철근 시장을 가득 채우는 푸념을 위기감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 "이렇게 심한 품귀에 가격도 못 오르고 수익도 안나면, 수요가 줄고 팔아야 하는 걱정이 커지면 어찌 될지…" 방점을 찍는 푸념이다.

원자재와 부자재, 철근을 만드는 원가의 지형을 포함해 사고 파는 거래구조, 가격결정 시스템까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대로 진짜 겨울을 버텨낼 수 있는가. 깊어 가는 가을, 철근 시장에 대한 깊은 성찰과 치열한 고민을 권하고 싶다.

이상한 품귀가 함께 머리를 맞댈 ‘기회’이자 ‘자격’이다. 품귀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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