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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트라우마, 시작인가 끝인가
공정위 트라우마, 시작인가 끝인가
  • 정호근 기자
  • 승인 2018.09.10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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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in 정호근 기자
스틸in 정호근 기자

철근 제강사의 담합 의혹을 조사해오던 공정거래위원회가 장고 끝에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016년 12월 조사 개시 이후, 2년 가까운 우여곡절. 장기간 조사에 시달려온 철근 제강사는 물론, 공정위 역시 심사숙고로 피로감이 쌓일 만한 시간이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과징금 규모는 1,194억원. 조사대상이었던 7개 철근 제강사 가운데 1곳이 제외된 6개사에 부과된 금액이며, 제강사별로 적게는 73억원 많게는 418억원의 과징금이 떨어졌다.

평가와 희비는 엇갈렸다. 출처와 근거를 알 수 없는 1조원대 역대급 과징금 예측 탓에, 상대적으로 1,194억원의 과징금이 작게 느껴질 수 있다. 과징금 규모에 대한 평가는 많다 적다를 말할 수 없는 주관적인 문제일 뿐이다.

주목 할 대목은 가장 큰 변수였던 기준가격 문제가 담합 혐의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이다. 곧바로 예전과 같은 협의체 복원을 말하긴 어렵겠지만, 당분간 기준가격 체제의 존속을 의미한다.

단순 원철 판매를 제외한 가공과 프로젝트 등 실수요 거래의 대부분 또한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 주된 혐의 대상이 됐던 유통 할인폭 변동 문제 역시 제강사간 합의 정황에만 국한시킨 프레임에서 연동성을 설명했다는 점은 아쉽다. 수급상황과 원부자재 등 할인폭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 협의 입증 논리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위안 삼을 것은 불확실성의 부담을 털어내게 됐다는 점이다. 막연하게 제시되어온 1조원대 과징금 스트레스나 안팎의 부정적인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2년 가까운 조사기간 동안의 심적 압박이나 업무차질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는 점 정도를 덧붙일 수 있겠다.

공정위는 철근 제강사에 대한 제재 방침을 정했다. 아직 최종적인 혐의 대상매출 산출과 과징금 확정 등이 남았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철근 제강사 역시 과징금 반환 소송 여부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게 됐다.

우선적인 부담은 확정적인 과징금의 선납이다. 철근 제강사 마다 자금형편에 따라 부과된 과징금에 대한 부담은 다를 수 있다. 설사 유동성의 여유가 있더라도,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달하는 과징금 선납 자금 마련은 부담일 수 밖에 없다. 아직 공정위 조사가 진행중인 관수철근과 철스크랩 문제를 떠올리면 다시 한숨이 깊어진다.

앞으로가 문제다. 유례 없던 3년 호황이 끝나고 내리막에 들어선 철근 시장은 연초부터 크게 흔들렸다. 영업적자 위기를 반복하고 있는 현실은 더더욱 불편한 일이다. 큰 흐름의 수요감소 대세, 불황 진입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철근 제강사가 얼마나 빠른 상황판단에 나서느냐. 또 열악해진 현실에 대한 적응력을 얼마나 높이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뼈아픈 공정위 트라우마는 시작일 수도, 끝일 수도 있다. 선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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