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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 안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가격이 안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4.05.2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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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in 정호근 기자
스틸in 정호근 기자

“가격이 안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유통업계 관계자의 한숨 섞인 푸념이 귀를 의심케 했다. 속수무책의 철근 가격 하락에 모두가 노심초사 했던 게 아니었던가…?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알아차렸을 법하다. 

마감 득실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일단 팔고 나서, ‘평균가격’이나 ‘중간가격’만 따지는 마감 패턴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현실이다. 내가 판 가격이 월 평균값이나 중간값보다 높아야 적자마감을 면할 수 있으니, 나는 안 팔더라도 가격은 더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격이 안 떨어질까 걱정’이라는 말은 지금 철근 시장의 가장 깊숙한 문제와 모순을 동시에 드러내는 역설적인 단면인 셈이다. 생사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유통점들의 형편을 떠올리면, 비난할 수도 없는 속마음이다.

과거 ‘제강사의 침묵’으로 표현되던 모호한 가격방침이 불확실성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가격하락을 늦추는 억지 순기능(?)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의 순기능도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은 동떨어진 가격체계가 철근 시장을 나락으로 끌어내릴 만큼 심각한 부작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언뜻 보기에, 평균값이나 중간값을 따지는 후정산이 합리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시작'도 '끝'도 없이 평균이나 중간 지점만 따지는 게 문제다. 바로 이 문제가 철근 유통가격이 밑도 끝도 무너지는 구조적인 악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과거 판매분에 대한 후정산이 아니라 당월 판매에 대해서도 평균과 중간 가격의 언질이 나오는 상황이다. 

매 월초에 앞다퉈 최저가 매출경쟁을 벌이고 중순 전에 급한 숙제를 끝내는 것이 철근 유통점들의 당연한 패턴으로 굳어졌다. 적자마감 부담이 큰 매월 하순의 판매는 아예 포기할 지경이다. 얼마에 팔든 남들보다 빨리만 팔면 되는 반사익 구조의 시장으로 전락했다. 

고육책에 고육책을 더해온 철근 시장의 현실도 문제지만, 하한선 없이 평균이나 중간만 따지는 가격정책은 당장 바뀌어야 한다. 생산원가를 한참 지나쳐 내려온 유통가격을 걱정하는 철근 업계에서 이보다 더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는가.

“마음대로 싸게 판 유통점 때문이다”, “상도를 잊은 경쟁사 때문이다”…나만 뺀 ‘탓’의 논쟁을 부추기거나 동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 이대로의 가격체계로 버텨낼 수 있는 시장인가’의 질문으로, 곪아 있는 시장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고자 한다.

장마 불안감이 큰 6월은 어떨 것 같은가. 설상가상의 7월~8월 비수기는 또 어떨 것인가. ‘가격방침은 단순하고 명확해야 한다’는 시장의 진리를 모를 리 없다. 고민이 아니라, 추락을 멈출 결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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