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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소환된 철근 할인, 판도라의 상자 될까?
4년 만에 소환된 철근 할인, 판도라의 상자 될까?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2.07.0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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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in 정호근 기자
스틸in 정호근 기자

‘물량할인(QD)’이란 단어를 꺼내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 눈치를 살폈다. 납득하기 힘든 저가판매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에서 출발해, 쉬쉬하면서 흘러 나왔던 할인판매 풍문이 공공연한 현실이 되기까지. 금기어처럼 여겨졌던 단어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과정의 굴곡이 적지 않았다. 

철근 제강사는 지난 2019년 초 일물일가(一物一價)를 선언하며 물량할인과 현금할인을 폐지했다. ‘만연했던 할인판매의 부작용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졌다’는 회의감으로, 비정상적인 관행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였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유통 대리점 기본할인 1만원까지 지난해 5월 대란에 폐지되면서, 철근 유통시장에는 공식적으로 어떠한 종류의 할인도 없는 상태가 됐다. 

‘할인’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예민해진 이유를 돌아보면, 최근 4년여 철근 시장을 견인해왔던 ‘원칙마감’ 기조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일 것이다. 원칙마감과 함께 철근 시장을 지탱해온 ‘최적 생산∙최적 판매’의 노력과도 어긋나는 일이다.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판매가격 이원화 정책과의 충돌 역시 마찬가지다. 정리하면, 할인이라는 단어는 견고했던 최근 년도 수익중심 판매정책의 근간을 한꺼번에 흔드는 개념이다.  

7월 현재 철근 시장에 등장한 할인의 명분과 방법은 제강사마다 상이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물량판매를 위한 동일한 성격이라는 점에서 물량할인이라 통칭했다. 할인 명칭에 대한 논쟁은, 어차피 내로남불로 이어질 뿐이다.  

물량할인의 화두로 다시 돌아가 보자. 물량할인에 긴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파괴력 때문이다. 과거 시장의 경험에 비춰볼 때, ‘물량할인은 시장을 무너트리는 가장 치명적인 할인’이라는 지적에 이견을 갖기 어렵다. 기준과 한계를 갖는 금융할인나 기본할인과 달리, 판매촉진을 위한 물량할인은 가장 치열한 출혈경쟁과 가장 처절한 결과를 남겨왔다.

금융할인도 없고 기본할인도 없는 상황에, 물량할인이라는 무서운 판도라의 상자가 4년 만에 다시 열린 것이다. 

물량할인이 모든 철근 제강사에 보편화된 상황은 아직 아니다. 할인판매를 진행하는 제강사들 역시 ‘일시적인 판매정책’이라는 점에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모든 제강사가 과다재고와 판매부진의 동일한 부담을 떠안고 있는 형편에서는 누구도 외면하기 힘든 선택이다. 마음 급한 고육책을 꺼낸 제강사에는 냉철한 가치판단을 주문하고 싶다. 큰 폭의 가격인하가 예정된 8월에 앞서 선제적인 할인판매에 나서는 것이 당장에 이득일지 모르나,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둑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혼돈의 고통은 시장에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시장에서 찾아보자. 이런 저런 성격으로 7월 철근 유통시장에 등장한 할인폭은 톤당 3만원~4만원이다. 이번 주 철근 유통시장의 직송판매 최저가는 톤당 112만원까지 내려섰다. 7월 유통(일반)판매 가격이 115만9,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제강사가 제시한 3만원~4만원 할인폭의 여력은 이미 소진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할인판매의 판촉 효과는 본격적인 7월 거래가 시작된 지 일주일도 안 돼 사라졌고, 추가적인 할인판매에 대한 시장의 기대만 높아졌다.  
 
7월은 터널 속 터널 일 수 밖에 없다. 7월 철근 판매에 대한 합리성을 다시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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