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한다’는 뜻의 육참골단(肉斬骨断). 작은 손실과 큰 가치를 따지는 전략적 고민에 빗대는 표현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선택과 집중’ 등도 비슷한 의미로 떠올릴 수 있다.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의 고민을 철근 시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꺼낸 말이다.
지난 여름 철근 업계는 생산원가를 10만원 이상 밑도는 초유의 적자위기에 각성했다. 극한 경기침체 상황에, 그것도 수요가 바닥을 드러내는 비수기에, 가격 정상화의 승부를 거는 출발점이 됐다.
죽을 각오로 나선 승부는, 괄목할 성과를 이뤄냈다. 7월~8월 두 달여 만에 톤당 15만원 이상의 가격을 회복시킨 것은, 철근 업계의 절박한 생존의지도 있었지만 과도한 비정상 구조에 대한 시장의 이해와 공감이 컸다. 해도 너무한 가격붕괴 상황에서 ‘그럴 만 했다’는 인정이 철근 업계의 위기탈출에 일조한 것이다.
9월의 철근 시장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더 이상 오르기 힘들다는 신뢰. 바로 고점인식이다. 재고를 떠안게 된 시장은 구매를 멈췄고, 너도 나도 차익실현 매물을 쏟아내는 현실의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이제 무엇을 지킬 것인가’ 판단과 선택이 다시 중요해 졌다.
추가적인 가격인상 만큼 중요한 것은, 힘겹게 회복한 가격을 지키는 것이고. 추가적인 가격인상을 위해서라도, 회복한 가격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인 수익을 좌우할 가격은, 여러모로 ‘뼈’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살’에 해당하는 것은 판매량(매출)이다.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된 9월은, 성수기가 시작되는 관문이다. 또 10월과 11월은 올 한해 성과를 좌우할 최대 승부처다. 적자탈출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생산과 판매를 희생했던 철근 제강사들 입장에서도 외면하기 힘든 유혹이다. ‘이제는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압박이 제강사 안팎에서 다시 커질 수 있다.
더욱이 9월과 10월은 조직 내 ‘평가’가 예민해지는 시점이 아니던가. 예외적인 경기침체 상황이 아니더라도, 과거 9월과 10월의 판매실적을 위해 가격을 희생했던 기억들이 많다.
가격에 대한 신뢰를 지켜야 한다. 힘겹게 이뤄낸 7월~8월의 성과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도 막아야 하지만, 불황을 버텨낼 최후의 보루가 가격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가격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수요도 밀리고 틀어지는 왜곡이 심해지니, 가격과 판매를 완전히 구분 짓기도 어려운 일이다. 가격(하락)과 판매(감소)가 최악의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시장을 바로 직전의 상반기에 뼈아프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결국 뼈와 살을 둘 다 취하는 최선은, 가격을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