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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만 바뀌는 철근 칼자루…'대결 관계' 반복
방향만 바뀌는 철근 칼자루…'대결 관계' 반복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3.08.10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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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in 정호근 기자
스틸in 정호근 기자

2021년 상반기의 철근 대란을 겪은 직후, 철근 구매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하던 중견건설사의 구매담당 임원과 마주 앉은 적이 있다. 당시 건설사들 사이에는 ‘안정적인 철근 거래가 결과적으로 ‘가격’과 ‘자재조달’ 모두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새로운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대화 중에 건설사 임원이 물었다. “제강사와 건설사의 철근 거래에서 무엇이 문제라고 봅니까?” 나는 “지나치게 대결적인 거래관계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변했다. 해당 임원이 기대했던 답변이었을 지 모르나, 적어도 부정하지는 못했다. 시장상황에 따라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거래패턴의 폐해를 지적하고 싶었고, 그것을 대결적인 거래관계라 표현했던 것이다. 

과거 철근 시장에서는 ‘칼자루는 잡았을 때 휘둘러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했다. ‘내가 칼자루를 쥐었을 때, 상대방을 봐준다고, 나중에 상대방이 칼자루를 쥐었을 때 나를 봐주지 않는다’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신뢰다. 철근을 만들어 파는 제강사나, 그 철근을 구매해서 쓰는 건설사나, 어느 쪽에서도 효과적인 거래패턴으로 보기 힘들다. 

시장의 합리적인 상식이 아니라, 힘의 논리만 앞세운 거래에서 비롯된 문제다. 돌이켜 보면, 과거 철근 시장에서 겪었던 ‘수급대란’이나 ‘적자위기’ 등이 상대방을 벼랑 끝까지 몰아 부치고 나서 일어난 일들이다. 지나치게 대결적인 관계가 각자의 거래 리스크를 자처하는 시행착오를 되풀이 해온 것이다. 

수요한파를 겪고 있는 철근 시장의 칼자루는 건설사로 다시 넘어갔다. 이를 확인시키듯, 건설사들의 가격인하 압박이 거세다. 제강사 흔들기가 시작된 것이다. 고정거래를 이어오던 제강사를 옮겨 다니면서 무리한 할인폭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기존 계약가격의 조정 요구까지 거침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 칼자루를 쥐고 있던 철근 제강사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난 2021년 대란에도 제강사는 건설사와의 계약 물량과 가격을 그대로 이행했다’는 것이다. 한 제강사 영업임원은 ‘철근 가격이 크게 올라도 계약가격을 깎아달라 하고, 철근 가격이 크게 떨어져도 계약가격을 내려달라는 요구를 받는다’며 불편한 속내를 호소하기도 했다. 

건설사도 분양이 끝난 아파트의 시세가 급락했다고 분양가격을 깎아주지 않으니, 계약된 철근 가격을 내려달라는 요구도 시장의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다. 해당 철근의 계약시점 시황에서 각자가 최선을 다한 계약조건일 테니, 그대로 각자가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예외는 또 다른 예외를 만들 뿐이다. 

하지만 과거의 철근 시장은 그러지 못했고, 현재도 외면하지 못하고 있으니 문제가 반복된다. 제강사와 건설사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통점들만 애가 탄다. 

독이 바짝 오른 건설사들은 다시 쥔 칼자루를 신규 계약에서 맘껏 휘두를 태세다. 2021년의 대란을 겪고 ‘안정적인 구매의 순기능’에 초점을 맞추던 건설사들의 고민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제강사-건설사 턴키 거래에서 할인폭이 5만원을 넘어서면 거래 안정성이 떨어진다. 그 할인폭이 7만원을 넘어서면, 예상치 못한 원가 급변 상황에서 철근 제강사는 대응력을 잃는다. 즉, 서로가 의도치 않은 거래차질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과거 건설사가 턴키 할인폭을 10만원 이상으로 몰아 부쳤던 것이, 제강사들의 벼랑 끝 반격과 극약처방의 출발점이 됐던 것을 떠올려 볼 법하다. 

제강사와 건설사 사이의 칼자루는 방향만 바뀐다. 어느 한쪽이 칼자루를 쥐면, 다른 한쪽은 칼날을 손으로 쥐고 버티는 식이다. 대결적인 거래관계의 폐해를 제강사와 건설사가 함께 되돌아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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