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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①] 위기의 철근 가공산업 진단 –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 신주열 이사장
[특별대담①] 위기의 철근 가공산업 진단 –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 신주열 이사장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3.11.07 0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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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8시간은 일해야 최소 매출·수익 맞추는 현실...비용부담 집중
열악한 악순환 구조, 경기침체 여건서 취약한 기반 드러나는 것
임가공 협업으로 얽힌 의존 관계, 연쇄적 부실 리스크도 공유
기하급수로 늘어날 수 있는 가공장 부실, 구조적 개선 처방 절실

충청에 이어 영남, 수도권 대응거점인 중부까지 가공업체들의 부도∙폐업 소식이 철근 시장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막연하게 느끼던 불황의 공포를 현실로 마주하면서 압박감의 차원이 달라졌다. 걷잡을 수 없는 연쇄폭발로 번지기 전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높다.

철근 가공은 건설과 제강, 유통 등 다양한 거래주체가 얽혀 있다는 점에서 강 건너 불 구경이 어렵다. 취약한 거래구조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 철근 가공시장을 진단하는 대담을 진행했다. 

Q> 철근 가공업체들의 잇단 폐업 소식으로 흉흉하다. 업계의 일원으로써 상황의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A>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철근 가공산업의 실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경기침체로 인한 경영부실로 비춰질 수 있지만, 철근 가공산업의 악순환 구조가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하는 문제가 더 큽니다. 

바로 고착화된 박리다매 구조입니다. 대부분 철근 가공업체들은 주 68시간 정도는 일을 해야 최소한의 ‘매출’과 ‘수익’을 겨우 맞출 수 있는 형편입니다. 더욱이 발주처가 원하는 수량과 시점을 맞춰야 하는 일방적인 거래구조다 보니, 가공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 한계도 큽니다. 발주가 없어서 공장이 쉬는 고정비도, 발주가 몰려서 야간이나 휴일 작업을 하는 과부하 비용도 모두 가공업체가 떠안게 되는 식이죠. 철근 가공시장의 거래차질 책임이 ‘발주’가 아닌 ‘납품’에 집중되는 구조 또한 함께 곱씹어 볼 문제입니다.  

철근 가공산업이 정규 근무시간 안에 선순환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한계를 주목해야 합니다. 철근 가공산업의 취약한 운영구조가 경기침체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신주열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 이사장

Q> 부도나 폐업 소식이 전해진 가공업체들은 ‘지방’이나 ‘2차 가공장’라는 공통점이 눈에 띈다. 해당 키워드들의 취약점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A>
발주처들이 철근 가공산업의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통상 철근 가공장은 건설현장 10곳~50곳의 수요대응을 동시에 운영합니다. 일일이 현장의 요구를 대처하기도 힘들지만, 건설사들의 발주가 몰리면 물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2차 가공장과의 협업이 필수적인 구조입니다.

그나마 일감이 많으면 2차 가공장들과의 협업이 가능하지만, 일감이 없을 때는 2차 가공장과의 협업 관계가 끊기게 되고, 2차 가공장들은 곧바로 가동공백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불확실성이 큰 가공발주를 대비해 철근 가공업체들이 대응능력 이상의 과다수주에 나서고, 발주가 몰리는 상황에서 손을 드는 문제가 반복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철근 가공거래의 표준계약서를 통해 한 달 동안의 ‘발주’와 ‘납품’에 대한 최소수량과 최대수량을 규정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2차 가공장들의 수익구조가 더 열악한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2차 가공장으로 넘겨지는 재하도 단가는 일정폭의 삭감이 이뤄지는 데다, 원철을 옮겨가는 운송비 부담 또한 큽니다. 2차 가공장으로 넘겨지는 발주 가운데 복잡가공이 많은 점도 낮은 생산성과 다양한 원철관리 부담을 떠안게 되는 원인입니다. 이렇다 보니, 2차 가공장들의 수익구조가 열악하고 경기침체 상황에서 일감이 줄면 곧바로 치명상을 입는 게 현실입니다. 

지방 가공장들도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방 건설현장이 경기침체에 먼저 직격탄을 맞다 보니, 예정된 공사현장이 취소되거나 미뤄지는 변수가 수도권보다 많습니다. 수요가 집중되는 수도권의 가공수요 대응에 나서려 해도, 통상 가공원가에서 15% 정도를 차지하는 납품 운송비가 40% 수준으로 급증하는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절대량의 수요’와 ‘가공원가’ 모두 지방 가공업체들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Q> 철근 가공장의 부실(부도,폐업)이 발생하면, 그 피해 규모와 범위가 대단히 크다. 왜 그런 것인가.
 

A> 최근 2~3년간 철근 임가공 단가는 톤당 5만8,000원~6만원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철근 가공시장은 ▲인건비 ▲운송비 ▲원부자재값 ▲유지관리 비용 등 이중삼중의 비용상승 문제를 감당하기 힘들어졌지만, 건설사나 제강사 등 발주처들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목이 집중됐던 3~4곳의 부도 가공장 가운데, 철근 보유재고의 피해만 약 100억원 대로 추산됩니다. 해당 가공장들의 매출규모에 비하면, 20배 정도 많은 규모입니다. 발주처가 제공한 원철을 임가공해서 납품하는 거래구조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일입니다. 최근 부도 소식이 전해진 가공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2차 가공장들이었습니다. 규모가 큰 1차 가공장으로 경영부실의 파도가 넘어온다면, 피해업체의 숫자나 피해금액이 얼마나 커질 지 모릅니다. 

철근 임가공의 부도 피해는 해당 가공장에 국한되지 않는 점에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거래관계로 얽힌 원청과 발주처, 1차 가공장, 2차 가공장, 납품현장 등 연쇄적인 피해에 줄줄이 발이 묶이게 됩니다.

수익구조가 열악한 철근 가공장의 경우, 톤당 1,000원~2,000원의 역마진 리스크가 쌓이더라도 경영부실을 초래하게 됩니다. 원청과 발주처의 외면이나 의도적인 비용전가 등으로 철근 임가공 업체가 부도로 내몰릴 경우, 훨씬 큰 피해가 원청과 발주처로 되돌아가게 되는 폭탄의 순환구조를 떠올려 봐야 합니다. 

톤당 100만원을 웃돌던 최근 년도 철근 시장에서 1,000원~2,000원의 임가공 원가상승분을 외면하다 부도피해나 납품차질의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현실은 난센스 아닐까요. 

Q> 경기침체가 가늠하기 힘든 장기국면으로 흐르고 있다. 철근 가공거래의 부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수요처(원청,발주처)와 공급처(가공)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A> 기하급수로 늘어날 수 있는 가공장 부실의 구조적인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신속한 조치에 나서야 경기침체의 충격을 견뎌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 듯이, 현재의 철근 임가공 거래에서 가공장들은 주 68시간 이상을 가동해야 최소한의 매출과 수익을 채울 수 있습니다. 이미 건설업계와 제강업계는 주 52시간 근무체제에 안착했지만, 철근 가공산업에는 아직 먼 나라 얘기일 뿐입니다.  

철근 가공단가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인건비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가공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은 법적으로 보장돼 있지만, 가공업체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가공단가는 보장받을 길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 철근 가공산업의 인건비 등 원가상승분의 적용여부를 수급논리의 잣대로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원청과 발주처는 임가공 업계가 생업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원가상승분을 가공단가에 반영하고, 안정적인 품질과 납품 서비스가 지속될 수 있도록 연간가공단가 체제의 정착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철근 가공업계 역시 △철근 가공의 표준화 △무인 로봇 개발 △필수자재 공동구매 등 비용절감과 선진화 노력으로 활로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 2편 연재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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