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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그토록 어려운 한마디
철근, 그토록 어려운 한마디
  • 정호근 기자
  • 승인 2019.11.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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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in 정호근 기자
스틸in 정호근 기자

“이건 정말 가격이 필요 없는 시장이네요. 문의 전화 한 통 없으니…” 매일 난감한 최저가를 확인하는 철근 시장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혹시나..’ 했던 기대로 11월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반복된 실망이 익숙할 수도 있지만, 절실한 마음의 실망은 매번 상처로 남는다.

거래가 끊긴 철근 유통 시장에서는 ‘현타가 왔다’는 표현으로 심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현타’란 ‘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라는 의미다.

11월 하순 철근 시장에서 현타란 어떤 의미인가.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또는 감당할 수 없는 최저 가격에도 거래가 멈춘 시장의 현실을 막막하게 곱씹는 심정일 테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복된 질문을 받다 보면, 어쩌면 그 답을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도 든다. 정해진 답은 알지만, 선택하지 못하고, 지켜지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으로 스스로를 가둔 벽 때문은 아닌가.

제강사나 유통점 모두 절실한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마음의 벽. 바로 ‘매출의 두려움’이다. 시장상황이 나빠지면, 선제적인 매출 확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심리다. ‘가뜩이나 수요도 없는 시장에서 내가 잡지 못한 수요를 남이 잡을까 봐’의 불안이다. 이 때문에, 실수요와 유통 모두 소문으로 전해지는 최저가를 의심없이 맞춰내는 가격불문 시장을 반복하게 된다.

‘거래의 필수요건은 흥정’이라는 말을 떠올려 볼 법하다. 흥정, 즉 균형 없는 시장에서 활발한 거래가 이뤄질 리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격을 맞춰내는 판매처의 불안을 확인한 수요처의 빗장은 더욱 단단해 지는 게 당연하다. 구매에 나서는 수요처도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도 사고 팔지 못하는 시장으로 전락하는 과정이 된다. 내가 팔지 못한 핑계로,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시장에 대한 한탄만 남을 뿐이다. 모두가 거래신뢰를 외면한 시장에서 누구를 비난하고, 어떤 잘잘못을 가려야 할 지 난감한 일이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아프게 꽂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장에서, 과연 불확실성이라는 게 있나요? 어차피 오늘 가격도 떨어지고 내일 가격도 떨어질 텐데.., 너무나 명확한 시장이죠”

이대로 라면, 가장 크게 기대를 걸었던 11월에 가장 큰 폭의 가격하락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 무언가가 크게 잘못됐다는 공감도 크다.

“그 가격엔 팔 수 없습니다!” 한마디면, 한순간에 바뀔 지도 모르는 시장이다. 그토록 어려운 한마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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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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