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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대란, "왜곡과 착시의 함정 간과하지 말아야"
철근 대란, "왜곡과 착시의 함정 간과하지 말아야"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1.01.1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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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in 정호근 기자
스틸in 정호근 기자

북극 발 한파와 폭설이 전국을 꽁꽁 얼렸던 지난 주. 8년 3개월여 만에 가장 비싼 철근을 사고 팔았다. 계절적인 비수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철근 시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에서 자주 등장하던 전형적인 ‘패닉바잉’의 모습이었다. 71만원으로 출발했던 국내산 철근 가격은 단번에 기준가격을 뛰어 넘어, 하루에 1만원씩 오르다 시피 했다. 거래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던 수입산 철근 시장의 가격도 경계 없는 상승세를 연출했다.

이쯤 되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안 살 때까지 가격을 올리고 살 때까지 가격을 내리는 것이 시장이라지만, 모든 일상이 얼어 붙었던 한 주 동안 철근 시장이 겪은 재고부족은 무엇이었는가. 막연했던 수급불균형의 실체를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난 한 해를 보내는 동안 철근 유통시장은 ‘재고도 없고 수요도 없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원자재 대란에 불이 붙던 12월 중순 직전까지도 유효했던 말이다. 없어도 너무 없다던 ‘바닥수요’가 갑자기, 그것도 한겨울에 폭증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현 시점 철근 시장의 뜨거운 거래는 현실수요라 말할 수 없는 ‘왜곡’ 또는 ‘착시’다. 당장 철근을 사려는 사람들의 속사정은 다양했지만, 누가 뭐라해도 가수요가 끌어가고 있는 시장임에 분명하다.

공급도 문제다. 글로벌 원자재 대란으로 위기를 맞은 철근 제강사는 생산과 출하를 크게 줄인 상태다. 보유하고 있는 철근 재고 또한 1분기 적자나 생산차질 사태를 완충하기 위한 공간으로 가져가려는 심산이다. 시세차익 기대가 높아진 유통시장은 보유하고 있거나 매입한 철근의 일부만 판매하며, 매출과 수익을 조절하는 상황이다.

제강사의 생산과 출하도 긴축된 상태지만, 그 나마 출하된 물량(재고)도 유통시장에 제대로 돌지 않는 문제가 품귀 체감을 키운 것으로 볼 수 있다. 납품차질을 걱정해 일단 필요한 철근 미리 받아 놓으려는 공사현장이나 건설사의 조기납품 요구까지 시장의 재고부족감을 부추기는 실정이다.

결국, 생산과 유통, 수요 주체 모두 철근 시장의 수급불균형 체감을 키우는 시너지를 내고 있는 셈이다.

연말 연초 철근 시장은 ‘누군가의 공포나 기대를 사고 팔았다’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철근 대란의 출발점이었던 원자재 대란의 이슈를 걷어내고 보면, 철근 시장의 수급불균형에 대한 시각은 달라진다. 또한, 앞당겨진 거래는 어느 시점이든 공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패닉바잉(공황매수)이 있으면, 패닉셀링(공황매도)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공급과 수요 모두에서, 왜곡과 착시가 강하게 개입돼 있는, 이 시장의 함정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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