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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①] "위기의 철근 시장을 논하다"…동국제강 봉강영업담당 이윤노 이사
[특별대담①] "위기의 철근 시장을 논하다"…동국제강 봉강영업담당 이윤노 이사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4.02.19 0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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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제강사 진입∙수요감소로 지형변화…실수요-유통 온도차 부담
가공장서 재판매 되는 철근, 월 2~3만톤…유통시장 수급∙가격 교란
포스코 코일철근, 가공장 철근 재판매 문제 확대…가격정책도 혼선
"구조적 문제 심각성 인식 중요, 왜곡요소 차단하는 해법 실천해야"

철근 시장이 가늠하기 힘든 불황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각자의 위기감은 높아졌지만, 불황과 맞서는 시선은 막연하다. 날카롭게 현실을 통찰하기보다, 무기력하게 방관하는 공포로 느껴지는 게 솔직한 공감이다. 

생존의 활로를 찾기 위해 모두가 동분서주하는 요즘. 동국제강의 행보가 각별한 시선으로 와닿는다. 근본적인 생산체계의 변화를 선언한 야간조업, 매달 유통향 판매단가를 선고지 하는 마감가격 고시제 도입 등 불황과 맞서는 정면승부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동국제강의 베테랑 마케터였던 이윤노 이사(現. 봉강영업담당)와 위기의 철근 시장을 논했다.[편집자 주]

Q> 2021년의 철근 부족 사태를 겪고 불과 3년도 안 돼서 정반대의 수급불균형을 마주했다. 철근 제강업계가 최적 생산∙최적 판매에 초점을 맞춰왔던 것까지 생각하면, 더욱 이해하기 힘든 변화다. 견고했던 철근 시장이 무너진 배경과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A>
국내 철근 시장의 지형변화에서 우선적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수요보다 공급능력이 많은 철근 시장에 신규 설비(제강사)가 들어서면서, 가까스로 유지되던 수급 밸런스가 무너졌습니다. 여기에 본격적인 수요감소가 맞물리면서, 철근 제강사들이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 대부분의 산업군이 겪고 있는 난제라 생각됩니다만, 뜻밖의 외생변수가 늘어나면서 과거에 비해 수요산업의 경기순환 주기가 빨라지고 그 폭도 커진 탓에, 수요예측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동국제강을 비롯한 철근 제강사가 나름의 기준으로 최적 생산∙최적 판매 기조를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한계가 컸다고 봅니다. 들쑥날쑥한 수요에 대한 예측실패나, 단기간에 탄력적인 생산량 조절이 어려운 제조업의 관성이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죠. 

조금 다른 의미의 지형변화도 중요하게 들여다 봐야 합니다. 바로, 철근 시장 안에서의 거래구조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철근 실수요 시장에서 가공 턴키 거래는 주지의 대세였죠. 문제는 건설경기가 기울면서 소규모 건설현장이 급격히 무너지고, 중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한 턴키 실수요의 집중도가 급증한 것입니다. 모두가 크게 체감했던 실수요와 유통 시장의 극명한 온도차도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죠.

수요흐름의 균형이 가공 턴키 실수요로 심하게 쏠리면서 발생된 철근 시장의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방관한 문제가 컸다고 봅니다. 가공 턴키 시장의 부작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한 것이, 철근 시장의 수급과 가격을 과도하게 무너트린 결과를 초래했다고 봅니다.

동국제강 봉강영업담당 이윤노 이사

Q> 동국제강은 최근 정책발표에서도 가공 턴키 시장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철근 가공시장의 어떤 문제를 수급과 가격을 동시에 무너트린 왜곡 포인트로 봤는가. 

A> 동국제강은 가공 턴키 시장에서 발생되는 로스 철근의 재판매를 심각한 왜곡점으로 보고, 해당 문제의 해결을 핵심적인 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이해를 위해, 가공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철근의 규모를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철근 가공시장의 통상 로스(Loss)율 3% 가운데 실질 가공 로스를 1.5%라고 가정하면, 연간 500만톤 규모의 가공 턴키 시장에서 7만5,000톤의 잔여철근이 유통시장에 재판매 되는 셈이죠. 보수적으로 봐도, 매달 6,000톤 이상의 로스 철근이 재유통 시장의 수급과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입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코일철근 시장입니다. 가공장에 지급된 직선철근이 코일철근으로 대체되고, 직선철근은 저가에 재판매 되는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코일철근을 생산하지 않는 제강사는 가공 원철을 전량 직선철근으로 지급할 수 밖에 없고, 보통의 가공장은 생산성 확보를 위해 가공원철의 6%~7% 정도를 코일철근으로 대체해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연간 20만톤 이상의 가공장 철근이 유통시장에 유입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렇게 되면, 가공 로스 부분에서 연간 7만5,000톤. 코일철근 부분에서 연간 20만톤 이상. 매달 2만톤~3만톤 규모의 가공장 원철이 철근 유통시장에 쏟아지게 되는 구조입니다. 폐업이나 부도, 경영난 등을 이유로 판매되는 예외적인 저가매물까지 포함하면, 가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철근의 문제는 훨씬 커집니다.  

철근 시장의 수요가 활발할 때는 그나마 문제가 덜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철근 유통시장의 수요흐름이 끊기다시피 한 상황에서는, 가공장에서 재판매 되는 철근이 전체 유통시장의 수급과 가격을 주도하는 시장교란 문제가 심각합니다. 가공장에서 유입되는 저가 철근으로 유통시장의 수요를 충당하고, 대세가격을 결정 짓는 기준이 되어 버립니다. 그야 말로, 백약이 무효한 시장이 되는 것이죠.

가공업체들도 저가판매의 손실을 감수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철근 재판매에 나서는 게 현실입니다. 결국, ▲가공 턴키거래의 납품주체인 제강사 ▲원치 않는 재판매에 나서는 가공사 ▲시장가격 왜곡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유통사 등 모든 구성원이 피해자로 전락한 채 구조적인 결함을 방치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Q> 포스코 코일철근도 시장진입에 나선 지 반년 정도가 지났다. 코일철근을 직접 생산하는 철근 제강사 입장에서 포스코 코일철근의 진입효과를 어떻게 보는가. 
 
A>
솔직히 여러가지로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초대형 철강기업인 포스코의 철근 시장진입 자체만으로도 불편한 일이지만, 코일철근의 생산을 위해 대단위 설비투자 부담을 감수하고 힘겹게 코일철근 시장의 생태계를 만들어온 동국제강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편치 않은 게 사실이죠.

당장, 포스코의 코일철근 진입은 가공장의 철근 재판매 문제에 기름을 붓게 됐습니다. 포스코의 코일철근으로 대체된 직선철근의 판매량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됐고, 그것이 코일철근 뿐만 아니라 전체 철근 시장의 수급과 가격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졌습니다.

포스코의 코일철근 가격정책에도 아쉬움이 큽니다. 

직선철근의 시중 유통가격을 적용해 주는 포스코의 코일철근 가격정책은 야심 차게 뛰어든 코일철근 사업의 출발부터 가격결정권을 포기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포스코의 코일철근을 사용하는 가공장들이 보유하고 있던 직선철근을 저가에 예측판매 하도록 유도하는 부작용입니다. 심지어는, 포스코의 코일철근을 풀어서 직선철근으로 판매되는 것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시중 철근 가격이 과도하게 무너진 최근에는, 포스코가 직선철근 유통가격에 맞춰주던 코일철근 가격정책에 난색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적어도, 포스코는 ‘얼마에 팔릴지도 모르는 상태로 시장에 공급되던 자사 코일철근이 철근 시장에 얼마나 큰 혼선을 가져올 지’를 진지하게 자문해 볼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철근 제강사들은 생존을 위해 설비를 폐쇄하거나 최적 생산∙최적 판매 기조로 힘겹게 활로를 찾고 있는데, 전용설비도 아닌 선재설비의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철근 생산에 뛰어든 것은 포스코가 일궈온 어떠한 위상에도 맞지 않는 일입니다.
 

Q> 가공장의 로스 철근이나 코일철근 대체 철근의 재판매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고민하는 해법을 듣고 싶다.  

A> 가공장 철근의 재판매는 개별 업체의 일탈보다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철근 업계 전체의 생각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더 이상 안일하게 방관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모두의 위기를 자초할 것’이라 생각을 바꾸고, 제강업계와 가공업계가 해당 문제들의 왜곡요소를 차단하고 바꿔가는 노력에 합심해야 합니다. 

저희 동국제강은 가공 로스율 3% 가운데 1.5%는 현물. 나머지 1.5%는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책정된 1.5%의 현금과 기존 가공단가를 포함해 톤당 7만3,000원의 가공단가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로스 철근을 필요 이상으로 지급해 재판매의 원인을 제공하는 문제를 미연에 차단하는 것이죠. 

수급과 가격의 왜곡을 일으키는 가공 로스부문의 철근 공급을 현실화하는 대신, 가공단가를 제값으로 지급해 상생의 가치를 키우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코일철근도 구조적인 문제의 심각성만 정확하게 이해하고 생각을 바꾼다면, 당장에라도 해법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기존 철근 시장에서도 익숙한 ‘바터(Barter)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입니다. 동국제강은 이미 동종 제강사와 물물교환 방식의 상생거래를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제강사는 자사 가공 협력사의 코일철근 고민을 해소시켜 주고, 가공사는 코일철근 구매를 위해 감수하던 손실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 선순환의 효과가 철근 유통시장의 수급과 가격을 정상적인 흐름으로 회복시킬 것이라 믿습니다.

[ 2편 연재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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