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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하는 철근 유통, “무엇이 문제인가?”
신음하는 철근 유통, “무엇이 문제인가?”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3.02.08 12: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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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유통시장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숨통을 트지 못하는 악순환이 견고해지면서 유통업계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다. 수요절벽과 유동성 경색, 가격체계의 구조적인 한계 등 감당하기 힘든 악재가 한꺼번에 몰린 탓이 크다. 업(業)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토로하는 철근 유통시장의 문제와 고민을 조명한다.

■ 수요 부재, 제강사에 밀리고 수입에 밀린 ‘유통’

근본적인 문제는, 수요의 부재다. ▲금리폭등 후폭풍이 거센 건설경기 ▲계절적 비수기 ▲시세불안 의식한 구매연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달라진 동절기 수요패턴 등이 맞물렸다. 절대량의 수요 자체가 워낙 적다 보니, 예외적인 최저가 판매가 전체시세를 끌고 가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철근 유통시장의 수요체감이 더욱 열악해진 것은, 제강사에 집중된 실수요 탓도 크다. 이원화 가격체계 이후 유통업계의 실수요 수주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실수요처 입장에서는, 가격도 좋고 공급도 안정적인 제강사 직거래를 선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제강사와 유통업계의 수요체감이 크게 달라진 양극화 현상도 이 때문이다. 더 이상 제강사의 수요체감으로 유통시장을 판단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실수요 시장에서 밀려난 유통업계는, 악조건의 실수요처나 금리폭등에 직격탄을 맞은 바닥시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실정이다. 그나마도 저가 매력이 커진 수입 철근에 한 번 더 밀리면서 국내산 철근 유통의 설자리가 더욱 좁아졌다. 팔아야 하는 절박함에 ‘묻지마’ 최저가를 던지고, 맹목적인 추격에 나서는 악순환의 기반이 됐다.

■ 유동성 경색 심각…"자금도 체력도 번아웃"

올 들어 철근 유통시장이 급격하게 무너진 데에는, 유동성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거래공백으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유동성 문제가 커진 것이다. 유통업계의 자금경색은 매출 급감의 단순한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악순환의 시너지가 녹아 있다. 

당장 급한 결제자금 마련을 위해 무리한 저가판매에 나서고, 이 때문에 최저가 경쟁이 과열돼 더 낮은 가격에 던져야 하는 굴레다. 여기에 제강사의 적자마감과 막연하게 미뤄지는 후정산 때문에, 자금확보를 위한 최저가 판매의 압박이 커지는 구조다. 

본지 통계를 기준으로, 유통 대리점의 역마진 판매는 지난해 5월 이후 10개월 동안 지속됐다. 이 가운데, 지난해 11월 이후 최근 4개월 연속 숨 고를 틈 없는 가격 하락장이 이어졌다. 장기화된 역마진 판매와 가격 하락 때문에, 유통업계의 체력이 바닥을 드러낼 만큼 소진된 상태다.

부실한 결제까지 유통업계의 유동성을 옥죄는 요인으로 부상했다. 금리폭등 여파로 크고 작은 실수요처의 부도 피해 뿐만 아니라, 납품중인 현장의 기성금 연기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철근을 팔고도 제 때 대금을 받지 못하거나, 수요공백 때문에 결제기간이 긴 수요처에 매달려야 하는 실정이다. 미수금 불안이 팽배해지면서, 결제(조건) 인심이 박해진 것도 유동성 부담이 커진 요인으로 지목된다.

■ 선판매∙후정산의 회귀…"음성적 가격정책 탓"

철근 유통시장은 선판매∙후정산 체제로 회귀했다. ‘할인 없는 일물일가’와 ‘예외 없는 원칙마감’으로 선판매∙후정산의 폐습을 바꾸고자 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암울했던 과거 시장의 경험에서 선판매∙후정산은 철근 시장을 무너트린 핵심적인 문제로 지목돼 왔다.  

원가를 모르는 선판매와, 언제 일지 모르는 후정산의 굴레에 갇히게 됐다. ‘원가를 모르는’ 선판매는 두려움이기도 하지만, ‘무책임한 예측판매’를 부추기는 동력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금의 철근 유통시장은 극심한 수요공백과 자금경색 때문에 어느 때보다 예측판매의 유혹이 큰 형편이다. 가장 치명적인 시황에, 선판매∙후정산의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비공식적인 할인정책의 부활도 핵심적인 문제다. 과거 일물일가와 원칙마감의 성과는 음성적인 가격정책을 끊어낸 것에서 비롯됐다. 가격 이원화 체계를 지키기 위해, 비공식적인 할인판매를 부활시킨 것은 모순적인 일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비공식 할인판매의 수단으로 전락한 원철 프로젝트 수주를 일시적으로 라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 신규 제강사 변수의 부상…"줄어든 파이 나누는 부담"

신규 제강사의 진입 자체를 유통시장이 무너진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목하긴 어렵다. 다만, 급격하게 악화된 철근 시황에서 신규 제강사의 진입이 판을 흔들고 시장의 균열을 가속화 시키는 변수로 작용하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줄어든 시장의 파이를 나누는 각자의 수급체감이 열악해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절대량의 수요가 부족한 시황에서, ‘수량’이나 ‘구색’은 중요치 않다. 시세를 주도하는 것은 ‘가격’이다. 예외적인 최저가에 전체 유통이 맥 없이 끌려가는 시장에서,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한국특강의 가격정책은 공감과 우려가 공존한다. 궤도 안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신규 제강사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원가 변별력이 절실한 유통업계의 속사정이 맞물려 있다.

■ 무기력을 자처한 유통…회복의 출발은 ‘자성’이다 

유통업계 스스로도 되돌아 볼 문제다. 아득해 진 2021년의 고마진 판매가 역마진 판매로 전환되는 데에 불과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그 이후의 유통시장에서, 마진→역마진 판매 전환은 더욱 빨라졌다. 역마진 판매구조로의 태세 전환이 너무 빨랐고, 시세방어의 경각심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식이라면, ‘+8만원의 이원화 체계가 당장 없어지더라도 유통업계의 수익구조가 달라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쉽게 반론하기 어렵다. 

철근 유통업계의 숙원이자 숙제는, 적정 유통마진을 자력으로 확보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시장이다. 과거도 현재도 선판매∙후정산의 폐습을 악순환으로 이끈 한 축은 분명 유통업계 스스로다. △자력마진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2021년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던 일 △고마진 유통 판매를 위해 실수요 계약물량의 납품이행을 회피했던 일 △시황의 유불리에 따라 이원화 가격체계에 대한 입장을 달리했던 일 등은 유통업계가 곱씹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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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08 15:18:23
신음하는 철근 유통은 지났고 CPR이 필요한 철근 유통 입니다.

김** 2023-02-08 14:00:47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모든게 내 탓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