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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재유통 시장은 왜…“위기를 말하는가?”
철근 재유통 시장은 왜…“위기를 말하는가?”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2.03.11 0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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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재유통 업계의 활로 고민이 깊다. 본격적인 봄 성수기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시장의 틈새를 찾기 힘들다. 재유통 업계 스스로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생존을 위한 변화는 이미 진행중이다. 제강사 대리점이 되거나, 하치장을 마련하고 재고비축과 소매판매를 병행하거나, 수입산 철근으로 영역을 넓히는 등 다양한 대안을 선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철근 재유통의 근본적인 한계를 뛰어 넘기 어렵다’는 탄식이 깊어지고 있다.

■ 제강사의 판매정책 변화…’달라진 패러다임’

과거 철근 재유통의 전성시대는 제강사의 판매정책과 밀접했다. 제강사가 물량중심 출혈경쟁에 열을 올리면서 각종 할인판매가 난무하고, ‘일단 팔고보는’ 선판매·후정산 방식이 재유통의 성업을 가능하게 했다. 

‘다음 달 철근 가격은, 제강사도 대리점도 아닌 재유통 업체에 물어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재유통 업체가 유통시장을 좌지우지 했다’는 말에 무리가 없었다. 

철근 재유통의 고난행군도 제강사의 정책변화가 직접적인 요인이다. 출혈경쟁의 위기감이 높아진 철근 제강사가 할인정책을 중단하고, 엄격한 원칙마감으로 선판매·후정산→선정산·후판매로 바꾼 것. 제강사 입장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면서, 재유통 업체의 시장지배력을 잃게 만들었다.

할인도 없고 확정원가 판매가 당연해진 유통 대리점도 적자를 감수하고 자의적인 저가판매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유통 대리점의 판매단가 운용력 상실’과 ‘재유통 시장의 추락’이 구조적으로 맞물렸다. 

제강사의 최적생산·최적판매 정책 또한 같은 효과를 냈다. 매출·물량→수익 중심으로 정책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재유통의 설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제강사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밀어내기’ 판매를 하지 않고, 유통 대리점 또한 재유통 업체에 의존해 덩치를 키울 이유가 없어졌다.

■ 고단가·저마진 시대, "자금력의 한계 커졌다" 

철근 재유통이 소자본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유통시장의 선판매·후정산 시스템이 가장 핵심적인 여건이었다. 철근 시장의 ▲강한 계절성(성수기↔비수기)과 시세 변동성 ▲빠른 거래 회전력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대부분 재유통 업체는 ‘소자본’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품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고단가·저마진 시대는 재유통 업체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감옥이나 다름 없다. 1억원의 자금으로 △20년 3월에 6대/25톤의 철근을 운영했다면, △21년 3월에는 5대/25톤 △22년 3월에는 3대/25톤에 불과하다. 

마진확보도 어려워졌다. 철근 대란이 연출됐던 지난해 상반기를 제외하면, 최근 년도 철근 재유통 마진은 톤당 5,000원도 빠듯했다. 최근 수개월 동안은 톤당 2,000원~3,000원. 매입가격과 동일한 판매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철근 재유통 시장은 ‘박리다매’도 불가능해 졌다. ‘철근 가격이 2배가 됐으면, 유통마진도 2배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은 현실과 다르다. 자금력의 한계 탓에, 높은 철근가격 탓에, 침체된 시장 탓에, ‘박리소매’에 허덕이는 형편으로 전락했다. 

품귀 시장에서는 마진확보 여력이 만들어 질 수 있지만, 철근을 확보할 수 없는 또 다른 벽에 가로 막히게 된다. 철근 재유통 시장의 제3의 공급원인 가공업계 또한 상시적인 재고부족으로 재유통 시장의 숨통을 터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 ‘실수요 상실’의 시대, 유통 대리점의 영역 확장 

철근 유통시장은 ‘실수요 상실’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과거 유통시장의 실수요는 최근 10여년에 걸쳐 턴키 시장으로 편입됐고, 지난해부터는 ‘공급불안’과 ‘8만원의 넘사벽’으로 제강사에 몰렸다. 명맥을 이어오던 바닥시장의 실수요는 아파트 위주 건설경기와 대출규제로 크게 줄어든 데다, 그나마도 부실의 리스크가 커졌다.

실수요 공백이 커진 철근 유통시장은 보이지 않는 영역의 변화가 일어나게 됐다. 실수요의 활로가 막힌 유통 대리점들이 재유통 시장에 공격적인 승부를 걸게 된 것. 매출과 수익의 갈증이 커진 유통 대리점이 재유통을 건너 뛰기 시작했다. 영업직원을 증원하더라도, 직접 재유통 판매에 나서는 유통 대리점들이 늘어났다. 자금력과 하차장 운영을 통해 재고비축이나 도·소매를 병행하는 것 또한 재유통 업체의 설 자리를 조여오는 변화다.

■ 재유통 시장의 차세대 공포, ‘전자상거래’ 트렌드

전자상거래 트렌드는 철근 재유통 시장의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전자상거래는 물론, 생산주체인 제강사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재유통 시장을 우선적인 타깃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출사표를 던진 동국제강에 이어, 현대제철도 올해 4분기 중 전자상거래 진출을 예고한 상태다. 추후 동종 제강사들의 경쟁적인 합류도 당연한 예상이다. 제강사의 전자상거래는 ▲강종과 규격별 상시재고를 기본으로 ▲도·소매 대응이 가능한 단위별 운송과 혼적 대응 ▲폭넓은 가격 대응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평가받고 있다.   

제강사와 안정적인 거래를 원하는 바닥시장 수요처들이, △보증금 부담 없이 △원하는 물량을 △원하는 시점에 △매력적인 가격으로, 철근을 구매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어진다. ‘향후 제강사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재유통 시장을 대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질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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