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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강 故 오완수 회장 자서전 출간
대한제강 故 오완수 회장 자서전 출간
  • 스틸in 데스크
  • 승인 2023.03.30 14: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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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일 별세하신 故 오완수 대한제강 회장의 추모 1주기를 맞이하여, 오완수 회장 자서전 <철에서 삶을 본다>가 출간됐다.

이 책에는 대한제강의 역사이자 한 남자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국제시장 노점에서부터 매출 1조원대의 대한제강으로 성장해오기까지 악전고투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야, 내가 똥을 끼고 십 리를 가는 사람이야”

철과 함께한 오직 한길, 50년 쇳밥 인생 이야기
‘따뜻한 철강맨’ 대한제강 고(故) 오완수 회장 자서전

“하나의 기업을 키우는 일은 한 그루의 큰 나무를 키우는 것과 같다. 
한 그루의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일은 어느 한 가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흙과 물, 햇빛이 고르게 갖춰져 있을 때 나무는 세월을 견디면서 무성해진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잘 성장하는 일도 어느 하나로 성공비결을 단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작은 묘목을 심었던 사람, 
기업의 더 큰 미래를 꿈꾸며 먼저 발을 내디뎠던 경영자가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기꺼이 거름으로 쓸 줄 아는 것이다.”

이 책은 대한제강을 근 60년 동안 이끈 오완수 회장이 2012년까지 집필한 글을 모았다. 이듬해 봄에 출간하려 했으나 평생 공장만 보고 살아온 삶을 책으로 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오 회장의 뜻에 따라 타계 1주기에 맞추어 세상에 나왔다.

1939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출생한 오완수 회장은 1965년 대한상사에 입사한 후, 1991년 대한제강 회장으로 취임하여 2022년 타계할 때까지 60년 가까이를 줄곧 ‘철강’, 오직 한길로만 매진하며 반세기를 철과 함께 보냈다. 

‘똥을 끼고 10리를 간다’니 내게 늘 했던 이 말은 언제 들어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오 회장이나 대한제강을 떠올릴 때마다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다. 회사가 어려웠을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인내심으로 참고 버티며 간다는 이야기다. _「오완수 회장을 추억하며」, 이명(경남중·경기고 동창)

1945년 광복 직후 ‘도떼기시장’으로 불리던 부산 국제시장 내 한 칸 철물 노점상에서 시작해 2020년 국내 철근제조업계 3위에 오른 대한제강의 60년은 일제강점기 이후 부산의 역사이고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역사이다. 이를 이끈 오완수 회장은 이들 역사의 산증인이다. 역사적 혼란기인 1940~50년대 부산의 전경과 우리나라 철강업의 시작을 ‘종교가 공장’이었던 철저한 현장주의자 ‘오반장’, 오완수 회장의 목소리로 현장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매일 아침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세수를 마치고 
전국 거래처에 전화를 돌리시던 아버지”

1부 고철, 붕정만리(鵬程萬里)  
해방과 동시에 고향을 등지고 부산에 정착하여 철물 등짐장사에서 시작해, 리어카에 못과 철사를 담은 봉지 몇 개와 망치나 끌 같은 연장 서너 개를 놓고 팔던 철물 노점상, 국제시장 내 한 칸 철물 도매상을 거쳐, 대한제강의 전신인 대한상사를 설립한 오완수 회장의 부친 오우영 회장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완수 회장은 신뢰로 어려운 순간들을 이겨나가는 아버지의 삶에서 기업인의 성실함을, 열 형제의 맏이로서 남다른 책임감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아버지를 따라 못을 주우러 다니고 콩나물을 키워 내다팔았던 어머니의 이야기와 열 형제 집안의 맏며느리로 묵묵히 소임을 다해준 아내, 큰형을 아버지처럼 따라준 동생들에 대한 고마움도 담겨 있다. 또한 우직한 기업인으로만 알려진 오완수 회장의 어린 시절과 경기고등학교 시절의 일탈,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당시 품었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느그 아버지가 우째 만든 회사인데 이래 허무하게 처리할라 그라노?”
“이런 재무 상태로 회사를 정리하지 않고 
계속 끌고 나가는 것은 양심 없는 짓 아닙니까!”

2부 제강, 정금백련(精金百鍊)
부친인 오우영 회장의 별세로 서른다섯이란 나이에 가정과 회사를 모두 짊어진 오완수 회장은 회사 자금 사정이며 상속세 등을 감당하기가 어려워 회사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체온이 식기도 전에 당신이 이루어놓은” 회사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갖다놓고 거의 살다시피 하며 공장일에 매달렸다. 품질관리에 집중해서 얻은 철근콘크리트용 봉강 부문에 대한 KS마크로 한 고비를 넘기고 신평공장을 준공한 이야기부터 2차 석유파동과 80년대 초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이어진 경기침체로 사채까지 써야 했던 참담함도 이야기한다. 오완수 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좋을 때보다는 힘들 때가 더 많았다며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자신만의 두 가지 기본원칙을 들려준다. 그 첫번째는 사업을 하면서 정치권력의 힘을 빌려 쉬운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 원칙은 늘 현장에서 답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2부는 30대의 오완수 회장이 아무리 힘들어도 지켜낸 이 두 가지 원칙으로 어려운 난관들을 헤쳐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쇠가 다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고열과 고압을 마다하지 않고 인내하며, 자기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3부 압연, 갱상일루(更上一樓) 
3부는 50년 동안 기업을 일군 선배 기업인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지침서 같은 장이다.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에는 오너의 혜안과 냉정한 평가가 중요한데 이는 단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성실하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쌓을 수 있다는 것, 좋은 시절일수록 더욱 자신을 돌아보고 나빠질 때를 준비할 줄 아는 겸허한 자세가 뒷받침될 때 위기가 갑자기 들이닥쳐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경험에서 비롯한 생생한 조언들이 담겨 있다. 오완수 회장은 인내와 집중도 강조한다. 철을 보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힌트를 얻기도 한다는 오완수 회장은 고열과 고압에 시달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구조물의 뼈대가 되고, 기둥이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체를 지탱하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철이라고 한다. 쇠가 다른 어떤 것보다 강한 것은 그만큼 주어진 조건들을 인내하고, 자기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철에서 배운 인내와 집중으로 걸어온 오직 한길, ‘철강’에 대한 오완수 회장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나의 목표는 돈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4부 순환, 안거낙업(安居樂業)
“운명이란 닭장 속에 떨어진 매의 알과 같은 것이다. 스스로 닭처럼 평범하고 무료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매처럼 힘찬 날갯짓을 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순자의 말을 인용한 오완수 회장은 자기 인생의 그림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든지 형제들을 건사하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는 일념으로 부친이 물려준 사업체를 운영하는 데 몰입했던 오완수 회장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덕목으로 중용과 부족함을 짚는다. 정작 삶에서 중요한 문제는 균형을 잡고 조화로움을 잃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중용의 도를 깨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완수 회장은 부족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부레가 없는 상어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지 않기 위해 자면서도 꼬리를 흔드는데, 이러한 태생적 악조건의 극복이 상어를 바다에서 가장 강한 물고기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충분함보다 부족함이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줄 수도 있다는 오 회장의 혜안이기도 하다. 4부는 열 형제의 맏이로, 다섯 남매의 아버지로서 생존을 위해 달려온 기업인 오완수 회장이 말하는 삶의 가치를 들을 수 있는 장이다.
 

책 속으로

워낙 투자 규모와 시설 규모가 크다보니 한번 설치해놓으면 쉽게 움직이기도 어렵다. 그래서 적어도 10년은 내다보고 증설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아무리 의지가 굳은 사람도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해나갈 수 없는 것이 철강산업이다. _「튼튼한 쇠도 멈추면 녹이 슨다」에서

아버지는 그 리어카를 밑천으로 본격적인 철물장사에 나섰다. 장사라고 해봐야 리어카 위에 굵기대로 조금씩 봉지에 담은 못과 철사, 망치나 끌 같은 연장 서너 개가 전부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장사라기보다는 애들 소꿉장난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식구에게 그것은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 _「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고」에서 

여기저기에서 밥벌이가 되는 일자리를 놓고 다툼이 벌어졌고,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할 것 없이 길거리마다 물건을 사라고 외쳐대는 소리로 가득했다. 미군부대에서 버린 음식 찌꺼기를 모아다가 끓여 파는 꿀꿀이죽장사, 버려진 미제 깡통을 주워 반반하게 펴서 판잣집 지붕을 만들어주는 깡깡이장사도 있었다. 무슨 일이든 죽기 살기로 덤비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살벌한 현실을 매일매일 목격하면서 우리는 책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삶의 진실들을 하나둘 배워갔다. _「전쟁통에도 희망은 싹트고」에서 

어음 결제 기간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그까짓 일로 회사 문을 닫진 않는다. 사나이가 되어서 그만한 배짱도 없이 회사를 운영하겠나. 3일이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지금 당장 죽는 한이 있어도 남자답게 대담해야지, 3일이나 앞장세워놓고 무슨 걱정을 그리 하노.”  _「아버지의 남다른 성공비결」에서 

만약 그때 내가 원하던 대로 고시 공부를 하고 공직자의 길을 걷거나 정계로 진출했다면 청춘에 품었던 꿈을 실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애써 일군 기업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동생들이 많으니 그중에 하나가 나를 대신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자기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늘 마음에 걸렸을 것 같다. _「가보지 못한 길」에서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몇 년째 아버지와의 이별을 예상하고 살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내 앞에 놓인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너무나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선친이 남기신 기업과 거기에 딸린 많은 식솔들의 미래가 모두 나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심정을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내비칠 수 없었다. _「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품어라」에서 

부도를 피하기 힘들 것 같다는 벼랑에 선 심정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결국 아내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곧 딸의 입시를 앞둔 시점이었다. 아내는 회사 문을 닫는 것을 시험 뒤로 미루면 안 되겠냐고 애원했다.  _「고통 없이 여무는 열매는 없다」에서 

사업이 힘들 때마다 그 중요성을 더욱 크게 느끼며 지켜왔던 나의 두번째 기본원칙은 늘 현장에서 답을 얻는 것이다. 회사 경영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으면 생산 현장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도 있고, 현장을 모르고도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얘기들이다. _「어려울수록 기본을 지켜라」에서 

철의 특성과 역할을 보면서 나는 가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세에 대해 힌트를 얻기도 한다. 고열과 고압에 시달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구조물의 뼈대가 되고, 기둥이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체를 지탱하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철이다. 쇠가 다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주어진 조건들을 인내하고, 자기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_「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에서 

기업경영의 원리는 아주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능력도 여력도 없으면서 남이 하는 대로 다 따라 하려고 들면 얼마 못 가서 무너진다. 실체는 없이 숫자놀이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기업경영의 본질과 거리가 먼 것이다. 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최근 겪었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에서도 잘 알 수 있다.  _「인내와 집중으로 얻지 못할 것은 없다」에서 

기업가의 삶은 힘겨운 도전의 연속이다. (…) 앞으로의 세상에는 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때로는 뼈아픈 실패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사업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때마다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것이 기업인의 삶이다. _「이제부터 시작이다」에서 

서로 닮아가는 부부는 그런대로 잘 살아온 부부라고 할 수 있다. 서로를 자기 마음에 들게 바꾸려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상대를 먼저 이해하고 맞추면서 살아가려는 노력의 결과가 서로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랑 서로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나보다는 아내가 더 많이 이해하고 맞추면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_「부부로 산다는 것」에서 

자기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우리 인생은 오직 스스로에 의해서만 보잘것없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끝에서 아무런 핑계나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_「고맙다, 인생아」에서 


차례

서문 

1부 고철, 붕정만리(鵬程萬里)
원대한 뜻을 품고 긴 여정을 떠나다

튼튼한 쇠도 멈추면 녹이 슨다 
먼 길 떠나던 날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고
책에서 만난 더 큰 세상 
부산 국제시장이 키워낸 향토기업 
전쟁통에도 희망은 싹트고 
형제라는 소중한 재산 
아버지의 남다른 성공비결 
후회 없는 방황 
내리사랑과 치사랑 
가보지 못한 길 
열 형제의 맏며느리 
스물일곱에 시작된 철강 인생

2부 제강, 정금백련(精金百鍊)
좋은 쇠는 백 번의 담금질로 만들어진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품어라 
고통 없이 여무는 열매는 없다 
어려울수록 기본을 지켜라 
거침없이, 그리고 후회 없이 
말보다는 행동의 힘으로 
채우려면 비우고 얻으려면 기다려라 
인생의 전환점, 가장 빛나는 시간 

3부 압연, 갱상일루(更上一樓)
다시 한층 더 올라가 멀리 내다보고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변화는 끝이 없다 
좋은 시절에 미리 준비하라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인내와 집중으로 얻지 못할 것은 없다
정글의 법칙은 통하지 않는다 
능력보다 중요한 것 
장수 기업의 재발견 
믿는다면 과감히 맡겨라 
함께 일하고 삶을 나누고 
이제부터 시작이다 

4부 순환, 안거낙업(安居樂業)
편안히 살고 즐겁게 일한다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를 본다 
모든 일은 때가 있다 
더 큰 사랑을 주는 법 
돈이 따라오게 하라 
균형감각 
벗과 나누는 행복 
멋지게 나이 드는 법 
부부로 산다는 것 
고맙다, 인생아 

사랑하는 아버지께 
오민정, 오은정, 오희정, 오유진

오완수 회장을 추억하며 
장복만((주)동원개발 회장)│이명(경남중・경기고 동창)
유흥수(4선 국회의원, 전 주일대사)│권혁운(아이에스동서(주) 회장)
여인찬(해암회 회장)

[연혁]
오완수 회장 연혁
대한제강(주) 연혁

지은이: 해암 오완수(海巖 吳完洙)
1939년 10월 3일 경북 의성에서 아버지 오우영과 어머니 박기옥 사이에 열 형제의 맏이로 태어났다.
경남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 11월 5일 이정자와 결혼을 하였다.
1965년 대한상사에 입사하여, 근 60년 동안 대한제강을 경영하였다.
2022년 4월 2일에 타계했다.
슬하에 4녀 1남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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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2023-03-31 13:28:33
대한민국 철강업계의 역사이자 리더이신 오완수회장님께 깊은 경의를 표하며 자서전 잘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