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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거래변화와 선판매·후정산
철근 거래변화와 선판매·후정산
  • 정호근 기자
  • 승인 2019.01.1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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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in 정호근 기자

철근 제강사의 파격 방침이 현실의 문턱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연한 진통이고 당연한 과정이다. 수년, 십수년을 이어오던 거래관행을 바꾸는 일이 누구에게도 수월 할 리 없다.

‘왜 하필 지금인 것이냐’에 대한 회의적인 논쟁은 의미가 없어졌다. '오랜 시간 깊어진 관행의 문제가 누구 때문이냐'의 논쟁과 다름 없는 일이다. 절박한 승부수는 던져졌고,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다.

일관된 소신과 유연함으로, 현실 해법을 찾는 일만 남았다.

실행의 고민에서 떠오르는 한 가지 키워드가 ‘선판매 후정산’이다. 이 역시 철근 시장의 오랜 관행이고, 많은 왜곡과 부작용을 키워온 고질적인 문제다.

‘외상이면 소도 잡는다’는 속담은 선판매 후정산 문제를 지적하기 적당한 비유일 듯 하다. 일단 팔고, 가격은 나중에 결정되는 구조. 철근 시장은 사실상 가격 없는 거래의 수싸움을 벌여야 했고, 그것이 무책임한 거래의 이유가 됐다. 누군가는 불안감을 부추겨서 먹고 산다는 인정도 부정도 못할 오명을 짊어져야 했다.

파격 방침의 혼선이 깊어진 마당에 선판매 후정산 문제까지 들춰낸 것을 나무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랜 관행을 바꾸는 실행에서 선판매 후정산 만큼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도 없다.

혁파의 대상이 된 거래관행 대부분이 선판매 후정산이라는 틀 안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철근 제강사는 일물일가를 원칙으로 하는 판매가격 선고지 방침을 발표한 상태다. 하지만, 선판매 후정산 시스템 안에서의 실행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결연한 판매가격을 발표한다 해도, 후정산 가격이 사실상의 최종가격(원가)이라는 인식은 바뀌지 않는다. 관행에 기댄 거래심리 역시 바뀔 수 없다.

파격방침의 ‘실행’이라는 관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생업의 현실에서 각자의 의지만으로 관행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상대방의 의지는 물론, 나의 의지조차 신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바뀔 수 없는 확실한 가격이어야 책임감 있는 거래가 가능하고 관행도 바뀔 수 있다.

철근 뿐만 아니라 대다수 철강재 거래가 여전히 선판매 후정산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고정 거래의 효율성이라는 순기능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오랜 시간 고수해온 선판매 후정산 시스템이 생존을 위협할 만큼 변질됐다면, 결코 합리적이라 보기 어렵다.

‘선판매 후정산’을 ‘선정산 후판매’로 바뀌는 것이 사활을 건 변화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열쇠다. 제강사가 발표한 변화의 방침들은 '틀은 그대로 두고 알맹이만 바꾸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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