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키 하도급∙최저가 발주로 악순환 생태계 '품질 뒷전'
KS 등 품질 검증 기반 부재...무분별한 제품 혼용 여전
품질 개선 대안 제도적 구축...수요처 인식 전환 '절실'
[기획특집①] 철근 잇는 커플러, '최저價'에 밀린 '안전'
철근 커플러 시장을 무너트린 원인은 무엇인가?
최소한의 품질기준 부재…'룰 없는 경쟁'
커플러 시장의 진입장벽이 너무 낮다. 물론 제대로 된 생산기반과 품질관리, 사후처리 등의 온전한 체계와 조직을 갖춘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하지만 대다수 커플러 업체들이 영세하게 운영되는 데다, 일부 생산업체는 소재지로 찾아가보면 공장과 사무실의 실체를 확인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KS 인증 등 제품에 대한 최소한의 품질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보니, 외형만 갖춘다면 소재부터 제품 생산까지 그리 까다롭지 않은 게 사실이다. KS 인증 품질을 전제로 한 철근 시장에서, 국내산과 수입산을 저울질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가격만 따지는 구매방식 또한 커플러 시장을 비상식의 출혈 경쟁 공간으로 만든 중요한 원인이다. 커플러 품질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거나, 시험성적서를 요구하는 수요(발주)처를 찾아보기 힘든 현실의 문제가 크다.
턴키 거래의 부작용, 하도급의 하도급 구조…'품질검증 부실'
커플러 시장의 거래구조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구매 효율성과 비용절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턴키 거래의 부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철근’과 ‘가공’을 묶은 턴키 거래가 실수요 시장의 핵심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해당 턴키 거래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커플러까지 포함하게 된 것이다. 즉, 원청인 건설사가 제강사에 '철근+가공'의 턴키 발주를 주고, 제강사는 가공협력사에 '가공+커플러'의 턴키 발주를 주는 식이다.

턴키 속 턴키, 하청의 하청 거래구조에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첫번째, 서로 다른 제품이 턴키 거래방식으로 묶이다 보니 통합 견적의 성격이 강해졌다. 즉, 개별 제품의 ‘제값’을 따지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직접적인 수주 당사자인 철근(+가공)과 가공(+커플러)을 중심으로, 가격 등 수주조건이 책정되는 게 시장의 생리다.
이러한 턴키 거래구조 때문에, 철근에 묶이는 '가공'과 가공에 묶이는 '커플러'에 대한 납품업체나 품질 등을 꼼꼼히 검증하기 힘든 현실이 두번째 문제다. 건축 비용에서 커플러의 원가 비중은 극미하지만, 안전을 좌우하는 품질보다 최저가 여부만 따져서 납품처를 결정하는 거래관행의 폐해는 크다.
경기침체로 과열된 최저가 거래…'출혈경쟁의 외주'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이 품질보다 비용절감에 집착하는 시장을 만들어 냈다. 즉 수요(발주)처는 제품 검증보다 최저가 구매에 주력하고, 납품처는 절실한 매출(판매)를 위해 원가를 크게 밑도는 최저가 요구를 맞추게 되는 악순환이다.
철근 가공시장에서 커플러 납품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어볼 수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가공발주 물량이 급감하면서, 생존을 위한 매출과 수익 확보의 수단으로 철근 가공업체들이 커플러(철근 나사가공) 설비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턴키(철근+가공+커플러) 거래에서, 최소한의 마진 확보나 적자납품 부담을 줄이기 위한 출혈경쟁의 외주가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았다.
안전한 커플러, 신뢰 회복 대안 찾아야…
철근과 함께 건축물의 안전을 지탱하는 커플러의 ▲기계적 품질 ▲체결방식 ▲외형 ▲생산기반 등 표준화 요건을 규정하는 KS인증 기반을 갖추는 것이 가장 먼저 거론되는 대안이다. 이를 통해 커플러의 안정적인 품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커플러 산업의 효율적인 발전에도 의미가 크다. 관련 건축법에 철근 커플러 사용 기준을 포함시키는 법제화도 궁극적인 개선방향이다.
이에 앞서서도, △커플러 제작에 사용한 소재(반제품) 명시 △기본적인 품질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시험성적서(KS D 3752∙3517∙0249) 첨부 필수화 △제조사∙규격 등 제품 정보의 롤마킹으로 시각적인 변별력을 확보하는 것도 우선적으로 검토되는 대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발주처와 공사현장, 감리 등 수요업계의 인식변화다. 커플러의 품질 차이를 인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해 신뢰할 수 있는 커플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품질안정성∙공급안정성∙수요대응력 등 전반의 공급능력을 검증해 커플러 공급업체를 선정하고, 가산점을 적용해 변별요소를 만들어 가는 것도 고려해 볼 방법이다. 이와 반대로, 불량 제품과 공급업체에 대해서는 삼진아웃제도를 적용하는 등 시장 스스로 자정능력을 키워가는 노력도 중요하다.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는 방안도 필수적이다. 최근 대형 건설사가 턴키 발주에 포함되는 품목별 공급업체의 동반 참석 회의를 진행한 변화가 바람직한 사례로 거론된다. 각 제품과 납품에 대한 소통으로 거래 리스크를 줄이고, 상호간 신뢰를 높여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