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4:03 (금)
침몰하는 철근 분기價, 탈출하는 제강사
침몰하는 철근 분기價, 탈출하는 제강사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1.05.20 0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근 제강사가 분기가격체계 탈출을 시작했다. ‘생산원가’와 ‘시중가격’ 어느 쪽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커지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침몰하는 분기가격체계에서 뛰어 내리기 위해, 각자 몸에 맞는 구명조끼를 찾고 있다.

■ 천정부지로 치솟는 '유통價'·판매價 위협하는 '생산원가'

판매가격을 위협하는 생산원가, 아득하게 달아나는 시중가격. 둘 다 문제다. 휴일 직전, 국내산 철근 1차 유통가격은 톤당 105만원까지 뛰었다. 105만원은 최저가에 속할 뿐, 110만원 이상의 1차 유통거래도 많다. 수입산 철근은 천정부지다. 주요 수요업체는 톤당 115만원에도 구매가 폭주하자, 톤당 118만원까지 판매가격을 올리면서 휴일을 맞았다.

2분기 철근 기준가격은 톤당 80만3,000원으로, 휴일 직전의 최저 유통가격과 비교해도 톤당 25만원이나 밑도는 상황이다. 같은 시점 실수요 계약물량 납품가격은 톤당 70만원 대 중후반 수준으로, 시중 유통가격과의 격차가 톤당 30만원 선을 넘나드는 실정이다.

더 큰 위기는 원가다. 국내외 철스크랩 가격의 동반 상승이 탄력을 받는 가운데, 제강사의 철스크랩 매입가격은 톤당 50만원 선에 근접하고 있다. 철근 생산원가가 실수요 납품가격(70만원 대 중후반)은 물론, 분기 기준가격(80만3,000원) 마저 위협할 수 있는 위기를 현실로 마주하게 됐다.

천재지변 같은 시황에서, ‘분기가격체계가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에 무리가 없다.

■ 가격체계 탈출 감행하는 철근 제강사

유통향 판매에 적용해오던 지원금이나 금융할인 등 5월 들어 각종 할인폐지에 나섰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속을 끓이던 제강사가, 결국 분기가격체계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남은 2분기를 버틴다 해도, 3분기 시장에서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한국제강이 가장 먼저 소신 판단에 나섰다. 한국제강은 20일(목)부터 유통향 철근 판매가격을 톤당 89만8,000원으로 별도 인상하는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대형 제강사가 아닌, 중견 제강사의 선제적인 결정이라는 점에도 각별한 시선이 쏠렸다. 규모가 작은 제강사일수록 원가충격이 빠르고 크기 때문이다.

눈치를 살피던 동종 제강사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위기의식에 예외가 없는 상황에서, 제 각각의 가격체계 변화를 고심하고 있다. 다만, 여타 제강사들이 한국제강과 동일한 방식의 가격체계 변화에 나설지는 예단할 수 없다. 서로 다른 가격체계가 제시될 가능성도 높다.

‘가격체계 변화의 혼선을 줄일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타 제강사들도 최대한 서둘러 선택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주중에 향배의 가닥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 유통에 초점 맞춘 가격체계 변화…’또 다른 왜곡도 걱정’

철근 제강사의 가격체계 변화가 유통향 판매에 우선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강사 판매가격과 시중가격의 격차가 톤당 25만원 이상 과도하게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실수요향 판매 대부분이 분기가격체계의 틀에서 계약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계약으로 묶인 실수요보다, 일반판매 위주인 유통향 판매의 가격체계를 우선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과도한 마진을 누리고 있는 유통 대리점의 거부감이 덜하다는 점도 이유다. 방침을 확정한 한국제강의 경우, 유통향 판매가격을 종전 대비 10만원 가량 높인 톤당 89만8,000원으로 책정했다. 이를 적용하더라도, 유통 대리점의 재유통 판매는 톤당 15만원 이상의 고마진 구조가 유지된다.

하지만 ‘실수요’와 ‘유통’ 판매가격의 역전구조가 또 다른 문제로 남는다. 분기 기준가격을 넘어서지 않는 실수요향 판매가격과 유통향 판매가격이 톤당 10만원 수준으로 역전된다. 실수요향 계약물량과 비교할 경우에는, 톤당 15만원 안팎까지 더 크게 벌어지는 구조다. 향후 철근 유통가격의 거품이 꺼지고 나면, 실수요와 유통 판매가격의 엇박자 문제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

당장의 문제도 적지 않다. 자체적으로 실수요 프로젝트를 수주한 대부분 유통 대리점의 경우, 달라진 가격체계로 톤당 10만원 수준의 적자부담을 떠안게 된다. 프로젝트가 아닌 실수요 일반판매도 마찬가지 문제다. 재유통 판매비중이 많지 않은 실수요 주력 유통업체의 경우, 그야 말로 곡소리가 날 상황이다.

현재 가격체계의 틀에서는, 철근 유통업계의 실수요 대응은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철근 분기가격체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시장의 왜곡과 혼선을 줄이기 위해서는, ‘실수요와 유통을 아우르는 가격체계의 현실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