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철근 시장은 ‘총체적 난국’이라는 수식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건설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절벽, 팔수록 손해가 쌓이는 적자 판매, 번번이 시행착오로 남은 가격 정상화 노력까지. 유통과 가공, 수입, 제강사에 이르기까지 철근을 만들고 판매하는 모든 구성원이 벼랑 끝에 내몰리는 동반 위기 상황.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그 절박함 때문에, 철근 수출 특수 소식에 더 비상한 시선이 쏠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불황의 터널에서 만난 한 줄기 빛에 더 간절한 기대를 갖게 되는 마음일 것이다. 순도 99.9%의 내수판매를 이어오던 철근 업계에, 30만톤 넘는 단기 수출물량이, 그것도 적자판매를 강요하는 시중가격보다 톤당 10만원 이상 높은 가격에, 집중 성약 된 것은 그 자체로 역대급 사건이다.
무엇보다, 막막하던 연말∙연초 철근 시장의 출혈판매를 견제할 수 있는 ‘수출’이라는 선택지가 생겼다는 점은 대단히 큰 의미다.
하지만, 대형 호재로 급부상한 미국향 수출 특수는 치명적인 맹점을 갖고 있다.
그 첫번째는, 증산을 통한 수출 대응이다. 12월 현재 철근 제강사들은 평균 가동률을 50% 아래로 끌어내린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특수에 대한 욕심으로 생산량을 늘려서 대응한다면, 수출 특수가 30만톤이 아니라 100만톤이라도 무의미 해 진다. 오히려 힘겹게 줄인 설비가동을 다시 늘린 후유증만 심각하게 남게 된다.
두번째는 맹점은, 장담할 수 없는 연속성이다. 철근 시장을 들썩이게 만든 미국향 수출 특수는 우리 업계가 만들어 낸 기회가 아니다. 미국 트럼프 정부 관세장벽의 부작용이 만들어낸 ‘역설적인 틈새시장’이라는 평가가 적당하다. ▲한국 내 철근 시장이 원가 이하의 심각한 가격붕괴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1500원에 육박하는 고환율 쇼크가 아니었다면,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합리적인 관세정책을 펼쳤다면, 결코 주어지지 않았을 기회다.
이 시점에 나와야 할 새로운 화두는, ‘수출 특수를 과연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의 논점이다. 이번 미국향 수출 특수는 분명 대형 호재다. 그렇다 해도, 불황의 가장 처절한 바닥에 도달해 있는 철근 시장의 현실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또는 서로에게 물어야 한다. ‘뜻밖의 철근 수출 호재를 얼마나 값지게 소비할 것인가’의 질문을.
철근 수출 특수를 1+1 같은 ‘덤’의 여유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맹목적인 물량 확보 싸움에서 벗어나 ‘철근 시장의 정상화’라는 본질적인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숨통을 터준 수출 특수를 기회로 비정상적인 가격체계를 바로 잡고, 거래의 균형을 찾아가는 체질 개선의 소중한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외부 변수에 기인한 미국향 철근 수출길은 언제든 다시 좁아질 수 있다. 이번 미국향 특수를 발판 삼아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내수 올인’ 철근 산업의 한계를 바꿔가는 기회로 만들어 내야 한다.
이번 미국향 철근 수출 특수가 끝나고 평가의 잣대는 달라야 한다. 단순히 ‘수출 특수로 매출과 수익을 얼마나 챙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값진 기회를 만들어 내는 마중물이 되었는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