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년 동안 철근 가공조합을 이끌었던 신주열 이사장이 이번 2월을 끝으로 바통을 넘긴다. 신주열 이사장은 ‘철근’과 ‘가공’을 누구보다 잘 아는 베테랑 경영인으로 꼽힌다. 그런 그에게도, 호황과 불황의 극단을 오간 지난 6년의 철근 시장은 갈등의 연속이었다. 격변의 철근 시장과 치열하게 부딪쳤던 신주열 이사장과의 대담으로, 철근 가공시장의 고민을 되짚어 본다.[편집자주]
Q> 철근가공조합 이사장으로 보낸 6년의 소회를 부탁한다.
A> 가공조합 이사장 업무를 시작한 2020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의 시간이 흘렀군요. 가공현장 일선에서 함께 뛰는 일원인 동시에 가공조합 이사장직을 함께 수행하다 보니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새로운 배움과 성장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6년의 시간을 함께 뛰어 주신 가공조합의 모든 회원사분들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회원사분들의 지원과 성원 덕분에, 중요한 철근 가공 현안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가공산업의 위상을 높이는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 6년의 동고동락을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당장의 마음은 시원섭섭하군요. 이제 이사장직을 내려놓고 현업으로 돌아가지만, 여전히 가공조합의 일원으로써 저 나름의 충실한 역할을 이어갈 것입니다.
Q> 2020년 취임 이후 이사장직을 맡아오는 동안 ▲표준단가와 年단위 가공단가 ▲주 52시간 근무제 ▲로스율 현금화 ▲코일철근 지급자재 ▲최저가 가공발주 ▲복잡가공 등 다양한 쟁점에 대한 견해를 나눴다. 이들 쟁점이 하나로 모아지는 본질은 결국 ‘상생’이 아니었나 싶다. 철근 가공 시장에서 상생은 왜 이리 힘든 일인가?
A> 가공 턴키 시장의 태생적 문제부터 되짚어 봐야 할 듯 합니다. 철근과 가공을 포함한 가공 턴키 거래는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는 모델이긴 했지만, 그 출발점이 ‘전략적인 수주물량 확보’였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철근 업계가 공격적인 판매경쟁의 수단으로 가공 턴키의 거래방식을 도입하다 보니, 가공 턴키 거래의 ‘실익’과 ‘책임’을 공정하게 나누는 과정이 생략됐던 게 결과적인 문제로 남게 됐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가공 턴키 시장이 하청의 하청 구조로 형성됐던 것도, 구조적인 문제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가공 턴키 거래가 결정되는 수주단계의 협상 테이블에 가공업계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가공업계는 임가공의 역할에 국한됐을 뿐, 원청인 건설사와 거래조건을 직접 조율하는 위치에 서지 못했습니다. 철근 가공 거래가 하청의 하청 구조로 흐르면서 정작 가공 현장의 문제에 관심 갖지 않거나, 알아도 외면하는 시장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철근 가공업계 역시 생존 현안에 안일했던 태도를 반성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철근 가공 시장이 직접수주보다 간접수주, 즉 임가공 방식으로 형성됐던 구조적인 한계도 컸지만, 가공업계도 원청이나 발주처와의 거래 갈등에 적극 맞서지 못했습니다.
2021년처럼 호황일 때는 쏟아지는 발주를 감당하느라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소홀했고, 지금처럼 불황일 때는 당장 먹고 살기 위한 수주물량 확보에 매달리게 되면서 구조적인 문제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Q> 지난 6년 동안 철근 시장은 극단적인 호황과 불황을 모두 겪었다. 격변의 시절에 조합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뿌듯했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이었나?
A> 가장 뿌듯했던 기억은, ‘연간단위 가공단가’의 도입이었습니다. 지난 2022년 1월 기점으로 도입됐던 연간단위 가공단가는, 오랜 시간 미뤄 오기만 했던 철근 가공시장의 현안을 협업과 상생의 관점에서 풀어 냈던 상징적인 변화였습니다. 실제, 연간단위 가공단가는 철근 가공 턴키 시장에는 ‘거래 안정성’을 확보하는 공감이 컸고, 철근 가공업계에는 ‘최소한의 생존기반’을 확보하는 발판의 의미가 컸습니다. 그 덕분에, 연간단위 가공단가의 도입 당시에는 ‘가공 턴키 시장이 상생의 토대에서 성장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뿌듯했던 기억으로, 철근 가공업계가 자체 개발했던 가공 프로그램 ‘RBMS(ReBar Management System)’를 꼽아야 겠습니다. RBMS는 철근 가공현장의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토대로,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 등 철근 가공업계의 자생력을 높이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뜻깊은 성과였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가공조합의 ‘공동구매 사업’ 또한 가공업계 스스로 활로를 찾는 성과였다는 점에서 각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어렵게 관철했던 제도적인 개선이나 사업의 성과들이 불황의 충격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시장을 야속하게 지켜보는 최근 시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철근 시장에서 가공산업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이 있다. ‘실수요 시장의 필수 협력자’로의 역할을 평가 받지만, ‘유통시장의 가격교란 주체’로 지목되는 불편한 시선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A> 철근 가공 턴키 시장의 성장에서 우리 가공산업의 역할은 분명했습니다. 빠르고 정확한 품질의 가공 철근을 공급해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이고, 공기를 단축시키는 등 효율적인 공장가공 시대를 열어 냈습니다. 최근 건설현장의 안전 이슈가 불거지기 전부터도, 건설현장의 안전 관리 리스크의 상당부분을 가공업계가 떠안아 왔습니다.
하지만 원청인 건설사나 발주처인 제강사들은 가공산업의 열악한 현실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500~600가지(25톤 1대)에 달하는 복잡가공이나 코일철근의 조달, 최근에는 건설현장 안전을 위한 갈고리 형태의 수직근 가공 요구까지 철근 가공업계의 몫으로 떠넘겨지는 실정입니다.
협업과 상생의 출발은 합리적인 의견조율이지만, 아직 철근 가공시장에서는 원청과 발주처들의 일방적인 요구로 관철되고 고착화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철근 가공업계를 시세교란 주체로 지목하는 것은, 수요업계의 편향적인 평가 때문일 수 있습니다.
철근 가공산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론적으로는, 철근 가공장에서 유통시장으로 철근이 나갈 이유가 없도록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면 되겠죠. 하지만 원가 이하 가공단가와 로스율 할인에, 유통판매 부담까지 일방적으로 떠안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철근 업계 스스로 가공장 철근이 유통 시세를 교란하도록 악순환의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Q> 현 시점 철근 가공업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체감되는 위기는 무엇인가. 또한 줄도산 리스크에 대한 공포는 무엇을 말하나?
A> 지금 철근 가공업계가 처한 가장 심각한 위기는, ‘한계감’입니다. 철근 가공업계는 설비와 인력 등 줄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줄였습니다. 그럼에도 가공장과 인력을 운영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량도 확보되지 않는 절대적 수요부족 시장에서, 원청과 발주처는 철근 가공업계에 더 큰 부담과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공업체들 또한 더 큰 적자를 줄이기 위해 원가를 고려하지 않는 출혈 수주에 나서면서 버티고 있지만, 그 결과를 모두가 모를 리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가공 턴키 계약을 맺는 공사현장은 짧게는 6개월~1년, 길게는 2년~3년까지도 이어집니다. 지금 당장의 폐업을 막기 위한 출혈 수주 물량의 납품이 언제까지 얼마나 정상적일 수 있겠나요. 한동안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버텨낸다 해도, 지금의 철근 가공거래는 향후에 일어날 수 있는 원가상승이나 수급변화(수요회복)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철근 가공시장은 언제든지 줄도산 공포가 현실의 리스크로 일어날 수 있고, 사실상 임박한 상황입니다. 철근 가공시장의 줄도산 사태가 벌어질 경우, 신규 현장은 물론 납품 중이던 현장들까지 공사차질을 피할 수 없고, 대체 가공장 역시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가공 턴키 거래의 모든 주체가 동시에 치명적인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것입니다.
Q> 가공 턴키 시장의 선순환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꼭 해결되어야 할 현안을 꼽는다면?
A> 모두에게 절실한 위기극복을 위해, 더욱 필요한 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 아닐까 싶습니다. 협업의 거래관계가 무너지지 않아야, 결국 각자의 생존도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수요업계가 철근 가공산업의 프로세스에 대한 더 많은 이해와 인식의 전환에 나서야 합니다. 철근 가공현장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얼마나 무리하고 위험한 발주가 이뤄져 왔는지 곧바로 알게 될 겁니다. ‘철근 가공도 건설의 일부다’는 인식으로 연대의식을 가져 주길 바랍니다. 철근 가공산업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은 수요업계의 협력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시급한 실행 현안을 몇가지 꼽아보면,
첫번째는, 생존단가의 확보입니다. 현재 철근 가공단가는 정상적인 납품이 불가능한 한계구간에 이미 진입한 상태입니다. 더 이상의 저가 발주는 철근 가공시장의 거래불능 사태를 앞당길 뿐입니다.
원가와 무관한 가공 철근의 운반비만 톤당 1만4,000원~1만7,000원에 달합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가공단가에서 운반비의 비중이 30%를 넘어서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철근 가공단가에서 운반비를 빼고 보면, 얼마나 열악한 조건인지 좀 더 쉽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철근 가공단가의 적정성을 가늠하고 최소한의 원가변동을 반영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번째는, 코일철근 지원과 바터입니다. 건설업계의 복잡가공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트렌드라면, 원철 지급도 그에 상응하게 이뤄져야 마땅합니다. 가공 철근 25톤 한 대에 500~600가지의 종류가 실리는 현실에서, 코일철근의 지원은 필수적입니다. 코일철근을 원청의 지급자재화 하는 거래조건이 당장에는 어렵다 해도, 코일철근을 고려한 원철 지급조건을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일철근 구매의 부담을 덜고, 효율적인 원철 운영을 위한 잔여 철근의 바터 체계를 적극 확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세번째는, 철근 가공의 표준화입니다. 같은 종류의 건축현장임에도 시공 건설사 마다 철근 가공의 설계나 투입되는 철근의 강종과 규격 등 모든 것이 제 각각 입니다. 비규격의 복잡가공 발주가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은 가공업계도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지만, 건설현장에도 비효율의 문제가 큽니다.
네번째, 거래의 표준화. 표준계약서의 도입입니다. 표준계약서는 가공 턴키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명료한 기준선을 제공해, 거래주체 모두에게 거래차질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안전핀 역할을 할 것입니다. 향후 가공 턴키 시장의 거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표준계약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안착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Q> 끝으로, 가공 턴키 시장관계자분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A> 예정된 일정이긴 했지만, 가장 힘겨운 시황에 조합 이사장직을 내려 놓게 되어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가공조합의 역할은 호황보다 불황일 때 더 중요하고 진짜 존재의 이유를 찾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호황기 때야 조합이 아니라 개별적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이 많지만, 불황기에는 함께 해법을 찾아가는 조합 본연의 역할에 효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황 때문에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만, 오히려 불황 극복의 의지를 적극적인 조합 활동을 통해 모아가고 실마리를 풀어 가시길 당부 드립니다.
수요업계에도 진심의 당부를 드리고 싶네요. 협업의 시장에서 결국 나 혼자 잘되고 살아남는 법은 없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서로 붙잡아주고 만들어갈 때, 그 안에서 생존의 질서를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한 산업 전체가 무너진다면, 그 안에서 나의 파트너만 생존하고 나의 거래만 안전할 리 없습니다. 물론 줄도산의 시장에서는 나 혼자만 온전한 생존의 대안을 찾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결국 서로의 역할을 지켜주고 의지하면서 생존의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불황의 강을 함께 손을 잡고 건너 시길 당부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