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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유통, 속수무책 하락장…"무엇 때문?"
철근 유통, 속수무책 하락장…"무엇 때문?"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2.05.18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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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유통시장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절정의 성수기 5월에 예상치 못한 하락장의 공포를 마주하게 됐다. 시세차익 기대로 쌓았던 재고는 처치곤란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

이번 주초 국내산 철근 직송판매는 톤당 117만5,000원 안팎까지 떨어졌다. 하락장을 견인하는 유통 하치장 재고는, 이미 톤당 116만원 대에서 실거래를 타진하는 실정이다. 가격의 자유낙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가격이 떨어질수록 거래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수요도 없고, 가격도 없다’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5월 초 114만원을 바라보던 수입 철근은, 원산지를 불문하고 톤당 110만원 미만 판매에도 진땀을 빼고 있다. 

■ 혹독한 가수요 후유증…”바닥시장 부재 간과했다”

올해 상반기 철근 유통시장을 끌고 온 것은 ‘가수요’다. 말 그대로, 실제 수요가 아닌 절박한 시세차익 기대가 만들어낸 매수였다. 자재값 급등과 대출규제 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바닥시장의 수요가 이미 한계를 드러냈지만, 지나치게 간과했다.

가수요 시장의 혹독한 후유증을 겪게 된 것이다. 철근 유통시장의 비축 매수세가 끊긴 데다, 그나마 있던 공사현장마저 가격하락을 의식해 구매를 미루면서 완전한 거래공백 상태에 빠지게 됐다.

■ 매입 일방통행, 바닥난 자금력…’멈출 수 없는 판매’

철근 유통업계의 자금력이 극도로 취약해졌다. 매출부족의 불균형이 지속된 상황에서도, 고가의 철근을 장기간에 걸쳐 매입하는 일방통행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큰 폭의 가격인상이 예정된 5월 직전까지 매집에 올인하면서 자금 운용력이 제로상태로 떨어졌다. 

“급한 결제자금만 마련되면, 저가판매를 멈출 것이다.” 철근 유통업체들의 이구동성이다. 하지만 발등의 불을 끌 최소 매출확보도 어려운 시황 탓에, 저가판매를 멈추지 못하고, 더 낮은 저가매물의 등장으로 수요가 얼어붙는 악순환 구조에 갇히게 됐다. 

■ 천차만별 비축원가, 하락장 버틸 저항선 ‘상실’

‘원가’는 하락장을 멈춰 세우거나 속도를 늦추는 저지선 역할을 한다. 5월 현재 철근 유통시장에 쌓여 있는 철근 재고의 원가는 천차만별이다. 1월에 매입한 톤당 100만원 대 초반부터, 4월 말의 116만원 대까지 포진해 있다. 

4월에 비축했던 하치장 재고는 마진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1차 저항선으로 지목됐던 4월 하순 비축원가가 무너지고 나서는, 2차 3차 저항선을 특정할 수 없게 됐다. 장기간 비축으로 다양한 원가가 하락 저항선을 찾지 못하는 독이 됐다. 

■ ”믿었던 10mm 마저…” 시세 동력 상실

철근 유통시장의 대표적인 안전자산은 SD400∙10mm다. 아무리 시황이 나빠도, 제값 판매가 어렵지 않았던 게 맞다. 4월 말까지 없어서 못 사던 SD400∙10mm 철근이 5월 유통시장에 넘쳐난다. 매집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판매 걱정이 없는 SD400∙10mm 골라 쌓은 것이다. 

SD400∙10mm 철근은 상시적인 부족 구색이다. 그런 탓에, 철근 유통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지탱하는 버팀목 해온 게 사실이다. 그런 SD400∙10mm가 넘쳐나는 철근 유통시장은 ‘시세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 가공장발 매도, “실수요 파업과 원철 증가 맞물려…”

가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철근이 유통시세를 끌어내리는 숨은 이유다. 가공장의 철근 매도가 특히 5월에 몰린 이유를 들여다봐야 한다. 5월의 가격인상을 의식해 잔여철근 판매를 미뤄온 것도 있지만, 가공장의 재고여건 변화가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

상시적인 원철부족에 시달려온 가공장은 자체 보유재고로 납품을 이어오면서, 운영 자금난이 깊어 졌다. 레미콘 운송노조와 철콘업계의 파업 등 건설현장의 공사차질로 가공출하가 주춤해진 데다, 5월 들어 제강사의 가공장 원철 지급이 크게 늘었다. 자금 경색에 시달려온 가공장의 재고가 현금화를 위해 유통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 철스크랩價, 막연한 ‘하락 대세’ 불안심리 자극

철스크랩 가격의 하락세가 심리적인 불안감을 부추겼다. 4월 중순부터 시작된 철스크랩 가격 하락이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하락세가 철근 시장의 막연한 ‘하락 대세’ 불안감을 키웠다.

6월 철근 기준가격은 일찌감치 톤당 1만원 선 인하에 그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가늠하기 힘든 하락장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철스크랩과 철근 가격의 동반 하락세가 맞물리면서, 제강사의 유통향 판매가격 조정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갈등을 부추기게 됐다. 

■ 아끼고 미뤘던 재고조절, “화를 키웠다”

재고조절의 기회를 놓쳤다. 철근 유통시장이 매집에 열을 올리던 4월에도, 적절한 ‘재고조절(매도)’과 ‘현금 유동성 확보’를 강조하는 조언은 많았다. 매도물량이 몰릴 5월 시장의 리스크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로 매도시점을 미뤘던 것도 사실이다.

첫번째 재고조절 시점으로 지목됐던 4월 말에는, 철근 유통시장의 강세가 연출되면서 비축재고의 매도를 5월로 넘겼다. 두번째 승부처로 지목됐던 5월 초에는, 신통치 않은 시세를 저울질하다 소신 거래의 기회를 놓쳤다. 결국, 적자판매의 위기감이 높아진 5월 2주차 후반부터 공격적인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상황을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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