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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장마가 철근 시장에 남긴 것
가을장마가 철근 시장에 남긴 것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1.09.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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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in 정호근 기자
스틸in 정호근 기자

가을 성수기를 앞둔 철근 시장에 가장 큰 변수는 결국 ‘가을장마’였다. 의미를 확대하자면, 봄 성수기를 앞두고 연출됐던 ‘원자재 대란’과 비견할 만하다. 철근 시장의 지형과 거래심리를 크게 바꿔냈다는 점에서, 이번 가을장마가 갖는 의미는 곱씹을수록 크다.

가을장마는, 질주하던 철근 시장이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는 강제적인 여유를 만들어 냈다. 달달한 시세차익의 기대를 높이던 유통세력에는 따끔한 일침을 가한 것이기도 하다. 가을장마는 맹목적인 관성에 끌려가던 철근 시장에 충분한 긴장감과 경계심을 제공했고, 그것이 남은 하반기 철근 시장에서 ‘균형’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게 만들 것으로 본다.

가을장마의 변수를 빼고 생각해보자. 7월 중순에 조기 반등했던 철근 유통가격은 3주도 안된 시간에 톤당 20여만원이 치솟았다. 8월 초에 뒤늦게 시작됐던 장마마저 건너뛰다 시피 끝나고, 가을 성수기까지 직선주로를 내달렸다면 어떠했을까. 장담하긴 어렵지만, 상반기 못지 않은 품귀나 상승장이 재현되지는 않았을까.

이번 가을장마의 가장 가시적인 결과는 가격하락이다. 7월 말 최고가격이 톤당 125만원의 문턱까지 올라섰던 유통가격이 110만원 선까지 10만원 이상 떨어졌다. 향후 가격흐름을 예단하긴 어렵지만, 일단 가을 성수기의 진입가격이 크게 낮아졌다. 무엇보다, 철근 가격의 구조적인 괴리를 크게 줄인 점이 고무적이다.

수급상황에 미친 영향도 크다. 3주 안팎의 가을장마가 지속되는 동안, 철근은 길을 헤맸다. 특히, 가격하락과 거래침체가 동반됐던 철근 유통시장에는 최근 년도 들어 겪어보지 못한 재고가 쌓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과거와 달리, 철근 비수기 재고가 제강사가 아닌 유통시장에 쌓이게 된 것은 유통 대리점이 보유하고 있던 고마진 때문이다. 유통 대리점이 고마진을 반납하며 제강사의 철근을 받아낸 것이다. 유통시장이 비수기 재고를 끌어안은 것은 당장의 거래마진과 가을 성수기 장사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지만, 철근 재고가 수요처에 가까운 시장의 저변으로 분산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다.

수입 철근 재고 역시 역대급으로 쌓였다. 지난 주 인천항 수입 철근 보유재고가 17만톤을 넘어서며 시장의 긴장감을 크게 높이기도 했다. 가을장마로 국내산과 수입산 철근 판로가 함께 막힌 데다 국내산 철근의 가격하락과 공급증가가 수입 철근을 재고로 쌓이게 했다. 지난 상반기 철근 대란의 중심이 유통시장이었던 점을 상기하면, 가을 성수기를 앞두고 철근 유통시장이 충분한 재고의 완충공간을 보유하게 된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 좋을 순 없다. 가을장마가 철근 가격과 공급의 긴장감을 낮추는 순기능만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비수기를 활용해 밀린 일정을 만회할 수 있었던 공사현장도 함께 멈춰 세웠다. 즉 가을장마가 수요와 공급 모두의 발목을 잡으면서, 철근 시장의 또 다른 불균형과 왜곡점을 만들어 냈다. 성수기 진입 직전에 크게 낮아진 시중가격 또한 시세차익의 발판으로 여기는 시선도 적지 않다.

가을장마는 철근 시장의 변동성을 상기시키는 교훈과 만만치 않은 숙제를 동시에 남긴 셈이다. 철근 시장은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됐다. 선순환 거래로 상호 리스크를 줄여가는 새로운 균형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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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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