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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가공, 예견된 대란 ‘전초전’ 돌입
철근 가공, 예견된 대란 ‘전초전’ 돌입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1.04.15 0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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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불문·지역불문, 신규 발주 ‘손사래’
쌓이고 눌러온 문제들, 납품차질 속출
시중발주 단가 껑충, 제강사 고정價 ‘추월’
7월부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시한폭탄’

철근 가공시장의 대란 공포가 커졌다. 감당하기 힘든 가공물량이 쏟아지면서 납품지연은 물론 거래차질 문제까지 속출하고 있다.

반전은 3월부터다. 봄 성수기 실수요에 시동이 걸리면서 철근 가공 발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4월 들어서는, 밀렸던 현장 수요와 신규현장 수요가 몰리면서 철근 가공업계의 과부하가 본격화 됐다.

지역별로도 예외가 없다. 대형 가공업체가 많지 않은 영남지역은 이미 3월 이전에 신규 수주여력이 없어졌다. 가공업체가 밀집한 경인·충청권 역시 3월 하순부터는 목에 찬 상태다. 현재는 권역을 넘나들며 가공장 섭외가 이뤄지고 있지만, 대부분 감당불가로 손사래를 치고 있다.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다. 기존에 발주된 물량의 납품차질은 물론, 이미 수주했던 물량을 반납하는 가공장들도 적지 않다. 납품 중이던 현장의 대체 가공장을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공 발주처들은 거래를 끊었던 가공장 뿐만 아니라 경쟁사의 가공장까지 수소문에 나서고 있다.

■ 껑충 뛴 가공단가, “역마진 구조 심각해”

발주처 스스로 가공단가를 올리고 있지만, ‘단가를 떠나 가공업계의 수주 여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수주불안이 극심했던 지난해 시중발주 가공단가는 톤당 4만원 대 초반까지도 떨어졌다. 하지만 올해 1분기 동안 4만5,000원→4만8,000원으로 대세가 바뀐 데 이어, 4월 들어서는 5만원 이상의 단가로도 신규 발주 가공장을 찾기 힘들다. 사실상, 시중 가공단가가 제강사의 고정단가(4만8,000원~5만2,000원)를 따라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차질을 빚은 가공물량이 톤당 5만7,000원에 간신히 대체 가공장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가공업계 안에서도 웃돈 발주가 당연하다. 감당하기 힘든 수주물량은 외주를 줘서라도 납품차질을 막아야 하지만, 1차 수주 단가에서 웃돈을 얹어줘야 하는 실정이다. 2차 수주 단가가 1차 수주단가를 넘어서는 역마진 구조가 현실화 됐다.

■ 예고된 가공 대란, ‘익숙했던 문제들’

그동안 철근 가공시장의 위험 신호에도, 발주업계는 최저가 입찰로 가공업체를 줄 세우거나 옥석가리기에 매진했다.

수주불안이 극심했던 지난해 저가가공이 만연해지면서, 철근 가공업계는 생존을 위해 설비와 인력을 크게 줄이는 고육책을 선택했다. 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 채용마저 끊기면서 그나마 유지하던 가공설비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게 됐다.

일방적인 거래구조도 문제였다. ‘장치산업’과 ‘노동집약산업’의 특징을 동시에 갖는 철근 가공은 탄력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철근 가공시장은 일방적인 발주에 따라 납품 수량과 시점이 결정되는 구조다.

수주현장의 공사가 미뤄지거나 당겨지는 일정 변수는 물론, 신규 발주 계획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가공업계 입장에서는, 수요의 ‘변수’나 ‘편중’을 미리 대비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수요 트렌드 변화나 원활치 못한 원철공급도 부담을 키웠다. 공사비용 절감을 위한 복잡(가공)설계와 급증한 내진철근 수요 등으로, 가공업계는 ▲생산성 저하 ▲로스 증가 ▲관리부담을 떠안게 됐다. 내진철근과 코일철근을 포함한 원철 전반의 공급이 원활치 못했던 것도 가공업계의 과부하를 부추긴 원인이다.

■ “진짜 대란은 아직 오지 않았다”…주52시간 근무제 ‘무방비’

철근 가공시장의 대란이 현실화됐지만, 전초전일 뿐이다. 모든 철근 가공업체가 포함되는 5인 이상 사업장의 주52시간 근무제가 오는 7월부터 의무화된다. 2개월 반 뒤로 다가온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철근 가공 대란의 본선이 될 전망이다.

지난 3년의 유예에도, 철근 가공시장은 무방비 상태다. 현재의 설비와 인력 그대로 주52시간 근무제에 돌입할 경우, 20~25%의 출하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만큼의 ‘가공능력 감소’나 ‘납기 연장’을 실감하게 된다.

주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는 7월부터 ‘비수기가 시작된다’는 위안도 무의미하다. 예상을 넘어서는 실수요 활황이 아니더라도, 가공 대란은 언제 어디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다.

철근 가공시장의 정상화 숙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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