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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철근 가공③..'표준 잃은 시장'
흔들리는 철근 가공③..'표준 잃은 시장'
  • 정호근 기자
  • 승인 2020.02.1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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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묻지 않고, 따지지 않는 ‘표준’의 퇴색
희미해진 불황 버팀목, 외면으로 무너지는 시장
시대적·사회적 이슈로 교감, 안전을 위한 약속

철근 가공 관련 표준들. 표준하도급계약서, 표준단가, 표준품셈 등이 대표적이다. 열악한 철근 가공시장에서 ‘표준’이라는 수식어는 단순한 기준의 의미보다, 간절함으로 느껴진다. 시장상황에 따라 표준의 적용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누구도 묻지 않고 따지지 않는’ 표준의 퇴색이 철근 가공시장에 대한 아쉬움을 더하는 현실이다.

■ 살리지 못한 표준계약의 기회..’여전한 일방통행’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8년 1월 개정된 하도급법과 함께 철근 가공에 대한 표준하도급계약서(이하 표준계약서)를 제시했다. 불분명했던 철근 가공비용의 책임 관계를 명확히 규정해 합리적인 비용 분담을 유도하는 골자였다. 명칭 그대로, 철근 가공의 표준적인 계약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표준계약 시대를 여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철근 가공시장에 표준계약서가 제시되고 정확히 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표준계약의 공감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건설사-제강사-가공사가 얽힌 철근 가공 거래에서, ‘표준계약서가 규정한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의 주체를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부터가 논쟁이었다. 건설사-제강사 간 거래의 하도급법 적용 여부 또한 실랑이가 이어졌다.

결국, 표준계약서에 모아졌던 기대는 시황악화의 불안과 함께 고개를 숙이게 됐다. ‘시장’이라는 현실의 벽을 또 한번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철근 가공시장은 발주처가 제시하는 계약서 그대로 서명하기 급급한, 표준계약서 이전 그대로의 현실에 머물러 있다.

표준계약서가 아예 사문화 된 것은 아니다. 일부 주체간 거래에서 표준계약서가 도입됐지만, 그나마도 거래조건의 규정이 바뀐 형태가 대부분이다. 본래 제정 취지 그대로의 표준계약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큰 한계는 표준계약서가 규정한 비용의 ‘분담’과 ‘변경’을 요구하지 못하는 가공시장이다. 표준계약서의 적극적인 도입은 물론, 규정된 내용을 주장할 수 없는 열악한 거래구조 때문이다.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표준’계약서는 ‘유명무실’계약서로 이름을 바꿔 달게 됐다.

■ 괴리 커진 표준단가..’난감해진 2020년’

철근 가공업계 스스로 거래의 기준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표준단가다.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은 지난 2017년부터 합리적인 철근 가공단가의 기준을 제시하는 ‘철근가공표준단가 적용지침’을 발표하고 있다.

표준단가는 매년 큰 폭으로 인상된 최저임금을 중심으로 물가와 부대비용 변화 등을 산정하고, 발주업계와의 협의를 병행해 결정해 왔다. 물론, 의무가 아닌 권장 가격이다. 충실한 계약이행과 생존단가 정착을 위해 절실했던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2017년 톤당 4만7,300원(건축용 SD400~500기준,로스3%)을 시작으로, 2018년 톤당 5만원, 2019년 톤당 5만4,000원까지 철근 가공 표준단가가 제시된 상태다. 하지만 표준단가 역시 발주업계의 소극적인 호응과 급격하게 악화된 시장상황을 배경으로,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 실정이다.

실제로, 시황악화가 급격했던 지난해 신규 수주 최저가격은 톤당 4만원 대 초중반까지 떨어졌다. 2019년 표준단가로 고시됐던 톤당 5만4,000원(SD400~500)~톤당 5만6,000원(SD500~600)을 1만원 이상 밑도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건설사나 제강사, 유통사 등 발주처는 물론 가공업계 마저 표준단가를 외면하는 현실이 됐다. 돌이키기 어려운 가공단가 만큼이나 아쉬운 ‘표준의 후퇴’다.

매년 두 자릿수로 뛰던 최저임금이 올해 2.9% 인상에 그친 것은 위안인가. 올해 가공원가는 더 올랐고, 이미 오른 가공원가도 반영하지 못한 실정이다. ‘현실과의 괴리가 커진 2020년의 표준단가는 얼마로 제시되어야 하는가’ 난감한 현실을 고민하게 됐다.

■ 나라가 정한 표준품셈, “무엇이 비현실인가…”

나라가 정한 표준가격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매년 건설공사 부문의 철근 가공 표준품셈 기준을 조정 발표하고 있다. 일반화된 공종과 공법을 기준으로 소요되는 자재나 공량을 정해, 관급 공사의 예정가격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2020년도 고시노임을 적용할 경우, 철근 공장가공(복잡 난이도 기준)의 ▲인건비 중심 직접비는 톤당 7만1,349원 ▲인건비와 설비·공장 관리비를 포함한 직접비는 톤당 11만5,586원으로 산출된다. 동일 조건에서, ‘매우 복잡’ 난이도 철근가공 단가는 톤당 2만원~3만원 가량이 추가된다.

말 그대로, 철근 공장가공의 직접비용을 산출한 것이다. 이 외에 필수적인 Shop Drawing과 운반비는 물론, 일반 관리비, 이윤, 부가가치세(VAT) 등은 제외된 순수 가공원가로 볼 수 있다.

표준품셈은 철근 가공단가를 규정하는 또 다른 표준이지만, 현실의 공감과는 거리가 멀다.

‘과연 어느 것이 비현실인가’의 질문을 던져볼 만 하다. 굳이 관수와 민수의 시장 관념을 구분 짓는다 해도, ‘관수와 민수의 단가 산출이 이토록 크게 다른 제품이나 시장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철근 가공시장은 ‘순수 가공원가’와 ‘영업원가’를 동일시하는 인식이 왜곡의 문제로 지적돼 왔다. 철근 가공의 부가가치를 적극 고민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철근 가공업계 역시 가공원가와 부대비용, 이윤 등 필수적인 구성요소의 명확한 의식 없이 수주에 나서면서, 수요업계의 잘못된 인식을 부추겨 왔다는 지적도 곱씹을 일이다.

■ ‘철근 가공’과 ‘표준’은 공교로운 것인가

철근 가공 관련 이슈들이 사회적이고 시대적인 화두와 맞물려 있다는 점은 공교로운 것인가. 열악한 현실을 바꿔 가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을 찾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맥이 닿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철근 가공시장에서 희미 해져 가는 ‘표준’의 아쉬움이 크다. 표준계약과 표준단가, 표준품셈 등은 호황이 아닌 불황을 위한 버팀목으로 볼 수 있다. 속절없이 무너진 표준은 철근 가공시장이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표준’이라는 단어가 갖는 사회적인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한다. 공정거래의 균형 회복을 위한 표준이기에 앞서, 정품·정량·품질 등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철근 가공시장의 표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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